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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정지의 결혼식

by 와락 2012.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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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가 시집을 갔다. 

청주 남자를 만나, 청주에서 결혼을 하다니.

우리의 정지가!


아침 7시 반에 집앞으로 픽업 온 오양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믿을 수 없어, 정말 인생은 모른다니까' 라며 가볍게 웃어 넘겼는데,

청주에 진입해 논밭을 가르며 저 만치 홀로 서 있는 식장 앞에 다다르자,

눈물이 날 정도로 큰 소리로, 허리가 끊어지게 깔깔 댔다.


식장 안 ATM 기계에서 축의금을 인출하고

앞에 있는 하얀봉투에 또박또박 각자의 이름을 쓰기 시작.

내 이름 세 글자를 나름 열심히 써가니, 오양이 옆에서 '진짜 못쓴다'고 놀림.

자기 차례가 되자 우쭐거리며 펜을 채가더니 나 만큼이나 '삐뚤빼뚤'

그래서 우리는 친구지.

신부 대기실에 조신하게 앉아있을 정지를 떠올리며,

계단을 올라가자, 밖과는 다르게 꽤 넓고 럭셔리해 보이는 식장 로비.

그 사이를 질주하는 정지 친구들의 아이들

살짝 긴장한듯 보이는 새 신랑의 반듯한 얼굴, 인자해보이는 예비 시아버지.

행복해 보이는 신랑신부의 사진, 화환.

여느 결혼식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내게는 특별한 정지의 결혼식 



신부대기실 안에서

여왕 포스로 기품있게, 꽃처럼 화사하게 앉아 있는 정지를 보니 다시금 웃음이 나왔다.

촬영기사님의 재촉으로 사진을 찍고,어머니께 축하인사도 하고, 

우리의 진짜 임무인 '돈가방 지킴이'를 수행하기를 2시간.

밥을 빨리 먹고 올까 잠시 갈등하다, 그깟 배고픈게 대수냐, 폐백까지 정주행이라며

고구마 2개로 허기를 떼우고 마지막까지 웨이팅.

원래, 식은 허무하지, 그런거지 라며 나름 결혼식을 치뤄본 선배로서의

별 도움 안되는 쓰잘데기 없는 노하우와 경험담을 아직 결혼계획은 물론, 남친도 없는

오양에게 떠들어대고, 양상추와 충무김밥을 양볼에 미어터지게 넣어 우물거렸다.


신랑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우리 자리에 앉아 정지는 맥주 원샷 스킬을 

눈 깜작할 사이에 선보이고, 소감을 물으니 예의 도도한 자세로 '해볼만 하다'라고 해서 

우리는 또 한번 꽥꽥 소리를 지르며 웃어대고.

경박하고, 유쾌한 우리들, 그래서 친구지 




올라오는 길, 고생했다며 수고비를 챙겨줬다.

그 덕에, 휴게소에서 지포와 호두과자와 핫바,소세를 사먹으며 씐나게.





서울에는 5시 넘어 도착,

마포대교로 넘어가는 중, 석양에 주황빛으로 물든 서울 하늘

63빌딩까지 같이 반짝거리는 이 와중, BGM은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





잊지 않기 위해 남긴다.

소중한 내 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오양과의 즐거웠던 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