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토요일 오전에 결혼한 우리는
5년 만에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에서 살고 있다.
5주년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던 건지, 몇 주 전부터 결혼기념일에 대한 알람을 주던 남편은
예상과 다르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나는 전부터 계속 블링블링한 그것을 바라고 있다!-
당일이 되서야, 느긋하게 '어딜 갈까?' 내게 물었다.
친정엄마가 주신 3시간의 자유시간.
지난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서귀포 '안트레'에 가서 돈까스를 먹기로 급 결정.
결혼기념일이 되서야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걸 사주는 매우 자상한 남편으로 잠시 돌아온 그 덕분에
오픈 30분 전에 도착, 대기표 1번을 뽑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나눠마시며 올레길을 거닐고,
바다를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었다.
늘 사진을 찍지만, 피사체가 무엇이라도 2% 부족해보이는 나의 촬영 솜씨에도
날이 날인지라 남편은 하하 웃어주었다.
돈까스를 먹고, 집으로 바로 가기엔 아쉬워
한참 고민하다, '오설록'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오후 3시가 가까워질수록 초초함을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벌써 5주년이라니.
그 사실 만으로도 서로가 대견해서인지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응, 그러게, 맞아.' 정도로 응수했다.
점점 무뎌지는 것인지,
5주년이라고 대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정도.
후후, 블링블링을 받았으면 무척 감동했을지도 모르나. 그 감동은 언젠가로 남겨두자.
다만, 집에 돌아오는 길,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그 까맣던 머리숱에 희끗한 것도 불쑥 보이고, 볼살이 홀쭉해지며 광대도 더 도드라지고
얼굴도 까무잡잡해.. 아 이렇게 우리 남편님도 나도 같이 나이를 먹네. 라는 생각에 '찡' 했다.
가끔은 튀어나온 그 이마에 '꽁'하고 꿀밤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울 때도 있지만,
새벽 다섯 시면 자리를 털고 책상에 앉아 묵묵히 일을 하는 뒷모습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손톱발톱도 예쁘게 오밀조밀 깎아주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비닐 하나 봐주지 않고 칼같이 분리 수거 하는 뒷모습은 나에게는 사랑스럽다.
우리는 아직 갈길이 멀었다.
앞으로도 계속 아웅다웅 살겠지만, 더욱 잘 살아봐야지.
나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남편님 덕에, 나도 정신줄 놓지 않고 살고 있으니.
안트레 돈까스, 둘이 먹다 지쳐 남겼다. 남산돈까스와 그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