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 첫 졸업.
드디어 나도 학부모가 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기대 반, 설렘 반이다.
경이의 졸업식날 아침 신규 상품이 출시되는 터라
8시 전에 출근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7시 40분 대행사 부대표님한테 연락이 왔다.
10시에 공식 오픈해야 하는 슬롯들이 열렸다면서.
단톡방에 버그라고 알리고 상품기획자를 깨운 후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회사로.
졸업식에서 읽을(부모들에게 아이에게 읽어 줄 축하글을 써오라고 미리 과제를 내심) 글도 써야 하는데...
여러 버그 신고에 카톡과 전화기를 붙들고 찬찬히 커피를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점심에 후다닥 노트를 펼치고 써 내려간 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설마 이따 졸업식에서 울지는 않겠지.
감상에 빠진 채 울먹거리며 읽는 것이 아니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어주어야지 다짐을 했건만.
7명의 졸업생 중, 축하글을 낭독하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대체 엄마는 왜 울까. 저 아줌마는 왜 저러지'라는 어리둥절, 대략 난감 표정의 아이들 앞에서
광광 울고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 못해 콧물을 마셔가며 또랑또랑은 커녕 울먹거리며 읽고 말았다.
아이의 졸업식인데 내가 더 흥분해서 울고 창피한 줄 몰랐다가(남편이 나 대신 얼굴을 붉혀줌)
새벽 3시경, 둘째 발차기에 깨여 일어나니 그제서야 몰려오는 이 부끄러움
동생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테니 걱정 말라 했지만...
경의 첫 학기를 같이 하려고 아껴두었던 30일간의 안식휴가를 신청했다.
엄마가 3월 한 달동안 쉴 거라 하니 아이는 그저 함박웃음.
품에 안기는 아이를 들어올리기도 이제는 쉽지 않다.
몇 년 후면 나 보다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좋아라 하겠지.
우선 지금은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현재의 시간을 아이와 충실히 보내는 것.
제주에서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미래를 걱정하느라
그저 마음 편히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찬란한 하늘과 시시각각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깨끗한 공기.
가끔 제주에서의 아이들 사진과 영상을 꺼내어 보는데 '아 이랬었지' 하며 탄식과 후회. 안타까움 동시에 느끼고.
한 달간의 휴가를 신청했지만, 다시 회사로 잘 복귀 할 수 있을지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내가 즐거워지기를 바란다.
#경에게 들려주는 졸업 축하글
옹알이를 하는 너를 보면서 언제쯤 나랑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게 될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네가 말문이 트기를 기다렸던 시간들이 생각이 난다.
두 다리에 힘을 불끈 주고 씩씩하게 일어나 걷던 네 모습
맘마 하면 입을 벌렸던 경이의 귀엽던 얼굴. 하나 하나 다 떠오르네.
바람이 불어오던 곳. 제주에서부터 경이가 좋아하는 피치와 라이언이 있는 판교까지
경이와 함께 출근 하던 시간들이 엄마는 무척 소중해.
같이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끝말 잇기도 하고.
가끔 경이가 멀미도 하면서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등원해 줘서 고마워.
엄마는 언제 와? 엄마 오늘은 일찍 와?
나도 저녁 먹기 전에 집에 가고 싶어.
교실에 들어가기 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묻던 너의 질문에 엄마가 시원하게 답을 못해줘서 미안했었어.
엄마도 회사에서 경이 생각 하면서, 경이한테 빨리 가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달려갔었어.
환하게 웃으며, 때로 투정을 부르며 엄마한테 안기던 네게 고맙다는 이야길 하고 싶어.
우리 딸 그 동안 엄마와 함께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느라 고생 많았고~ 너무 너무 고마워.
이제 경이가 초등학생이 되네.
졸업 사진 찍기 전에는 떨려서 잠을 잘 못자기도 했고
입학이 얼마 남지 않으니 마구 두근거리기도 해.
경이가 하는 모든 첫 경험들이
경이의 엄마로서도 처음이라서 겪는 거라서 경이롭고 설레이네.
경이의 첫 걸음마다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함께 할게.
졸업 진심으로 축하해 사랑해 경아.
졸업장을 받는 경이. 축하해 아가야.
언니의 졸업식에 참여하여 졸업가도 불러주고, 뒤에서 눈물을 닦는 둘째.
저러고 집에 와서 또 싸우고. 애증의 시대를 써내려가고 있는 주자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