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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2020년 12월 31일(keep calm and carry on)

by 와락 2021. 1. 10.

어느 낮 혹은 밤에 정령이 당신 뒤에서 당신의 가장 외롭고 외로운 고독의 순간에 슬며시 들어와서 당신에게 말한다.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살아왔던 삶 그대로를 너를 한 번 더 그리고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절대로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모든 고통과 모든 기쁨과 모든 생각과 한숨들, 그리고 당신의 삶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고한 거대한 모든 것들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고, 모든 것이 똑같은 순서로 일어날 것이다. 심지어 나무들 사이의 거미와 달빛, 그리고 이 순간과 나 자신까지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당신과 함께 위아래를 돌려놓으면서 반복되며 모래알처럼 무수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 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정령에게 이를 갈며 저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이런 순간을 경험했을 때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는가? "당신은 정말 신이십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이 당신을 사로잡는다면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변화시키거나 어쩌면 압도시킬 것이다.

 

- Friderich Nietzsche, The Gay Science, translated by Walter kaufmann, Vaintage Books / 어빈 얄롬, 치료의 선물 중에서 

 

 

 

 

새해가 밝았다. 

모두가 잠든 밤, 홀로 식탁에 앉아 타닥타닥 자판 소리를 친구 삼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나의 연례행사였는데... 신문지에 둘둘 말아 냉장고 야채 칸에 보관 중인 부추처럼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시간이었다.

중요한 계약이 보류가 되면서 담당자로서는 조급증을 감출 수가 없었고 

거리두기가 단계적으로 시행되면서 아이들 술래잡기 처럼 얼음 , 땡 하듯 멈춤과 재개가 반복하는 사이

회사는 계속 성장하고 좁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업무들도 주어졌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고(자격증 번호도 나와서 하루 정도 신나 있었다)

청소년상담사 2급 면접에도 합격했다. 수련만 통과하면 취득번호를 얻게 될 듯싶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든 일에는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으므로.

무능함과 유능함, 열패감과 성취감을 맛보며 오르락내리락하던 날들이었다. 

자격증에 합격을 했지만, 기쁨도 잠시.

일상은 변함이 없고 '참 이게 뭐라고...' 하던 중 이전 회사의 동료가 준 메시지에 아차 싶었다. 

"꿈,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전진해 가셔서 참 멋지드라구요~"

16년부터 시작해서 나에게는 변함없는 일상이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어쩌다 듣는 안부, 소식이므로

요동치는 나의 마음과 달리 누군가에는 점을 찍으며 전진해 나가는 모습처럼 보이는 것이겠구나.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모습, 어쩌다 기사로 접하거나 혹은 들었던 '타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잠시 찾아오는 허탈감 역시 허영심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합격이 되면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전문성, 역량 같은 것들이 증명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물론, 숙련성은 전보다 나아졌겠지만 알면 알수록 어렵고

그동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기울인 여러 물리적인 비용(시간, 돈)을 고려했을 때 좌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럴 때면, 

2018년도 여름특강에 정남운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내용을 떠올린다. 

 

"상담을 공부하는 것은 대단히 수지맞는 일. 

나 자신을 계속 볼 수밖에 없다. 해볼 만한 공부이다.

때론 내가 상담하기에 적절한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모두 웃음)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한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나는 적절한가.

상담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그러한가. 계속 반추하게 된다. 

 

 

공자님이 불혹의 나이가 마흔이라 했는데 끊임없이 미혹되며 보낸 2020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의 결실은 맺었다. 

자격증도 2개나 합격했고, 회사에서는 새로운 영역까지 도전했다. 

프로세스를 한 번 거쳐봤으니, 올 해는 좀 더 기대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집순이 경 선생은 코로나 블루를 겪는 듯 보였으나, 나름 또 잘 적응한 것 같기도 하다. 

가끔 학교에 가게 되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오는 일이 허다해서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나의 염려일 뿐,  경 선생의 대처방식이 그녀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기다리기로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동네 길고양이 근처를 배회하거나 단지 앞 공원의 비둘기들에게 쌀을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안 쓰는 필통에 쌀을 가득 담아 가지고 가더니, 어느 날 보니 방 앞 베란다 창가 위에 한 줄로 나란히 쌀을 놓아두고

하염없이 창밖을 보며 비둘기를 기다렸다. 

그 정성 때문인지, 경선생 방 베란다가 동네 비둘기들에게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듯싶었다. 

점점 쌀을 먹으러 온 비둘기가 늘어나면서 배설물들로 아파트 화단이 지저분해지자 엘리베이터에 공지까지 나게 되었고

방 베란다 앞이 떨어진 쌀과 먼지들로 더러워지자 이 모든 정황을 알게 된 남편의 만류로 쌀 배급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 이후로도 종종 비둘기들은 경 선생의 방 베란다를 방문하고 있다. 

경 선생은 한 해 동안 Warriors라는 고양이들이 전사로 나오는 책에 흠뻑 빠져 36권의 시리즈를 탐독하고

관련 가이드 북, 인물별로 구성된 책까지 반복하며 읽었다.  덕분에 영어 실력은 더욱 상승한 듯싶다. 

중학교 때 애플부터 영어를 배운 나로서는 이 모든 과정이 경이롭고, 감사할 따름이다. 

고양이에 푹 빠져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 까지 꿈꾸고 있는데 올해 그 소망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시봉이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워했으나, 그 아쉬움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소설과 그림을 그리며 창작열을 불태웠다.  4층에 사는 친구와 연작소설을 같이 쓰기도 했고(금방 그만두었지만)

졸라맨과 똥 모양으로 이모티콘 시안도 제작했고, 언니와 방콕 공연을 기획하여 식탁 앞에 포스터도 붙이고

공연 수익금을 얻으려 노력도 기울였으나 관객이 코로나 때문에 최대 3명뿐이라(할머니, 아빠, 엄마) 흡족할 만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줌 수업에 스트레스받는 언니와 달리, 금방 적응해서 줌 수업 중간에도 쉬지 않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이모 제보에 따르면 인터넷 수업 중 동영상을 켜 놓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기도 하고.

언니와 달리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해 비대면 수업에 적응하였다.

집에 있으면서 엄마나 아빠에게 연락하는 빈도가 잦아졌는데

예를 들어, 자기가 아끼던 지우개를 보지 못했는지,  목공풀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수학 문제집은 오늘 꼭 다 풀어야 하는 것인지

파란색과 하얀색 클레이만 따로 사줄 수는 없는지 등등, 바쁜 회의 시간마다 메시지와 전화를 해서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들게 했다. 

시봉의 장래희망은 연도별로, 매 분기별로 변했었는데 작년에는 '수의사'를 꽤 오랫동안 유지하며

언니와 함께 땅을 사고 건물까지 지어서 4층 남매들과 함께 사업을 도모하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도면을 그려 아빠에게 확인까지 받았으나, 아빠가 아닌 건축을 전공한 전문가의 입장으로 도면에 '문'을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섭게 지적하자 몹시 서운해하고 그 이후로는 아빠에게 도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 언니와 함께 놀러 가서 친구 고양이 똥까지 치우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그 고양이의 생김새, 식습관, 행동발달을 세세하게 이야기해 준다. 

언젠가 경 선생과 여동생과 밥을 따로 먹으러 갔는데, 경선생과 나의 대화가 별로 많지 않아서 동생이 신기해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의 대화에서 7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시봉이가 빠져서 그 공백이 컸던 듯싶다. 

 

 

남편은 점점 흰머리가 많아지고 있다.

야심 차게 등록한 운동센터가 코로나로 문을 닫자, 주말이면 동네 뒷산에도 꼬박꼬박 올라가기도 하고.

내 선물로 구매해 준 요가매트 위에서 나이키 홈트를 꾸준히 하기도 한다. 

아이들 수학을 봐주다 폭풍과 같은 위기의 순간들을 여러 차례 겪기도 했다.

그 사이에 흰머리가 더 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남편 패드의 구글 드라이브에 간직된 주 자매의 꼬맹이 사진들을 소환해서 같이 보면

사진을 찍었던 순간, 느낌, 냄새 모든 감정과 감각들이 다 살아난다. 

그랬구나. 그때 그랬구나. 귀여웠구나. 지금의 이 시간도 지나가겠구나. 

코로나로 회사 일의 진전이 더딘 것과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한 것 외에는 그리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남편이었다. 

본인의 루틴에 따라, 일어나고 운동하고, 식사하고, 농구를 보고, 아이들과 수학 문제를 풀고, 다시 낮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10시 전에 잠들고, 가끔 집에 맥주가 있으면 맥주를 마시며 농구를 보는 게 그의 행복한 시간. 

 

 

 

 

 

 

 

 

얄롬 선생님의 말씀처럼

일 년 후 다시 만난다고 상상하고 질문해 보자. 

"우리가 1년이나 2년 후에 다시 만난다고 상상해 보세요. 

어떤 새로운 후회들을 쌓아 왔나요? 당신은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당신이 후회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믿습니다."

 

 

1년 후

이 글을 보는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어떤 새로운 후회들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