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자기 효능감, 즉 스스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장에 누워서 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운동을 시작하면 일단 기분부터 뿌듯하다.
나 자신을 이겼을 때 그리고 내 몸을 컨트롤 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운동은 물론 세상 무엇이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p 74
계속 가봅시다 남는게 체력인데 / 정김경숙
지난 경주 벚꽃 마라톤을 같이 다녀온 이후로 남편은 종종 대회 정보가 있으면 넌지시 알려준다.
러너블이란 앱에 공지된 경포 트레일런 정보를 보고 경포호 주변을 달린다는 이야기에 바로 등록
5월 25일의 경포호라니! 지난 2월에 감기 기운이 있어 입으로만 숨을 뱉으며 아쉬워했던 그 경포호를 달린다니
결제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신이 났다.
5월 25일 캘린더에 동그라미를 치고
아이들 학원 스케줄도 조정하여 1박할 숙소도 미리 예약하며 출발
어김없이 새벽부터 출발하여 중간 휴게소에서 간단한 간식도 사먹고
선물로 받은 오즈모 포켓2 배터리를 충전해서 소중히 한 손에 들고 차에 탄다.
화면이 너무 작아 안보이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가볍고 달릴 때 잘 찍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부풀었는데
나중에 찍은 화면을 보니 무엇을 찍으려 했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점심은 정화식당에 다시 가서 먹고
이번에도 오징어 볶음을 시키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 갈치조림을 주문했는데
완벽하게 갈치조림의 승리.
제주도에서 먹었던 것 이상의 맛이었다. 슴슴하면서도 적당하게 간이 배어 맛난 갈치조림
경선생이 맛 평가에 야박한 편인데 갈치조림의 무조림은 외할머니가 해주신 맛과 비슷하다면서
밥 한 공기를 뚝딱 했다.
숙소로 옮기기 전
남편과 갔던 해변뷰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아이들 음료를 시키고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의 시봉이 뒤를 따라 남편과 아이들은 해변에 잠시 갔다가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매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강원도는 늘 예상보다 추웠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5시 트레일런 참석을 위해 남편과 출발
해변 광장에서부터 시작할 줄 알았는데 왠걸... 해변 모래사장에서 부터 출발이라고 한다.
5.4.3.2.1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자 모래 먼지가 해변을 가득 메웠다.
먼지가 눈과 코로 들어가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사이 사람들은 우르르 해변이 아닌 산책길로 뛰어가 하마터면 사람들에 치여 넘어질 뻔 했다.
즐겁게 뛰러 왔지 속도 경쟁을 하러 온 것도 아니므로(이렇게 쓰고 나니 엄청 잘 뛰는 것 같습니다만?) 인파들을 보내고 뒤에 홀연히 붙어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경포 호수 근처를 달릴 때는 새로 구매한 오즈모 포켓2로 영상도 찍으면서 여유를 즐겼는데, 나중에 찍고 보니 대체 뭘 찍었는지… 화면이 너무 작아 그랬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남편은 어느샌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가서 나를 기다려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초반 해변 달리기 때문인지 벌써 지치기 시작. 갈증도 나는데 급수대는 영 나올 생각이 없다.
공식대회가 아니라서 그런지 5km 넘어서야 급수대가 보인다.
이제 11km는 평상시 주말에도 마음 편히 달리는 수준의 부담 없는 거리이다. 성장한 나 자신을 보는 대견함.
중간 중간 응원해 주시는 자원봉사 분들의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활짝 웃으시면 박수도 쳐 주신다. 예전에는 그런 응원의 소리가 머쓱해서 어쩌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피니쉬라인을 통과할 때 해변에서 관계자가 힘차게 외쳐준 내 이름에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 보았다.
아무 이득 없이 누군가를 응원하는 그 호의에 답하니 즐거웠다. 달리기 세상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나보다 일찍 도착해 나를 기다려준 남편을 보며 해변 달리기를 마치고 줄을 서서 메달과 간식을 받기로 했다. 저녁이 되니 또 쌀쌀한 바닷바람에 땀이 식으며..입술도 파래지기 시작했다. 닭강정을 받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따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회를 먹고 싶다는 경선생의 의견을 받아 해변 근처 음식점에서 먹고(나는 속이 불편해서 거의 먹지 않았다) 방문 리뷰 선물로 받은 불꽃놀이 폭죽을 받아들고 음식점 앞의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불량품이었는지 여러 번 남편이 시도했는데도 피융~ 기운 없는 소리를 내다가 힘없이 꺼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시봉이는 언니한테 촬영을 부탁하고 옆 사람들의 폭죽을 배경으로 프로필 사진을 계속 찍고.
달리기를 하면서 여행도 계획하고
아이들과 함께 달리면 더욱 좋겠지만 (언젠가의 소망으로 미루고) 남편과 취미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다음 달리기 여행은 어디로 가게 될지 기대되고.
내년에는 트레일러닝을 시도해 볼까 꿈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