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게 나였다 그 전부가 세월이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 이동진 평론가 / 인사이드 아웃2 한줄평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을 읽고나니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주자매 1호는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보기로 했고 2호는 엄마와의 데이트를 단칼에 거절했다. 남편의 주말 시간이 애매해서 나홀로 보게 되었는데 사춘기가 된 ‘라일리’와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Well we all knew this day would come)라는 라일리 엄마를 보며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경선생은 기말고사에서 5과목 모두 만점을 받았다.
집에 와서는 주로 나무늘보처럼 침대에 늘어앉아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고 방 바닥에는 온갖 유인물, 문제집을 펼쳐 놓아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럽히고 있긴 하지만
그 카오스 중에도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시험준비를 했던 것 같다.
주로 공부는 스터디카페(라떼는 독서실이었는데)에서 하거나 학원 근처 도서관을 이용했다.
수학 학원을 중 1이 입학을 앞두고 등록해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학원에서는 뒤쳐졌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 진도가 늦은 편이라(그래도 고등수학을 나가고 있는데 이것 또한 늦은 편이라고 한다)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었는데 특목고를 준비하는 수험대비반 시험에도 얼마 전 합격했다. 학원의 마케팅이겠지만(심지어 학원비는 약 13만원 상당 올랐다...) 그걸 알면서도 아이 옆에서 같이 운동화 끈이라도 질끈 맬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애니웨이, 경선생은 학원에서 내 준 모든 유인물(족보라 일컫는 기출문제, 심화문제 등)을 다 풀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번 수학시험에서 전교에 만점이 2명인가 3명인가 그 중 한 명이 경선생이라고 한다. 시험이 쉬운편이라 진도를 앞서 나가는 친구들이 '설마'하고 간과하며 넘어갔을 문제였을 텐데 꼼꼼한 경선생은 맞춘듯 하다.
수학진도가 늦어 마음을 졸이던 경선생은 이 시험으로 안도감을 얻었는지 "엄마 내가 한 3천문제 가까이는 풀었을거야."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또랑또랑 말한다. 시험 3주 전부터 스카를 다니며 나름의 계획을 짜고(그 계획은 절대 노트에 기록하거나 어딘가에 남겨두진 않고 오로지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듯 싶다) 그 노력의 결실을 맛보며 '성취감'을 느꼈을 테다.
시봉이의 사춘기는 계속 가속화 되고 있다.
경선생의 사춘기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그래프의 기울기가 완만해졌다면
시봉이는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를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중이다.
유튜브 숏츠에 빠져 하루 종일 뷰티 관련 영상을 시청 중이다. 하루 종일 촵촵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얼굴에 수분크림과 바세린을 덧바르는데 얼굴에 말 그대로 ’광‘이 난다. 번쩍번쩍. 학원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지나간 tv프로그램을 시청하고(10년전 방영한 비정상회담 등) 아니면 쇼츠를 보거나 뒤늦게(대부분 밤 늦게) 밀린 숙제를 하고 있다. 아침은 늘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피를 말리는 투덜거림과 짜증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 당하는 것 같지만 가끔 보면 본인은 얼마나 부대끼려나. 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아마도 우리 2호는 ’불안‘이 마음 속 한 가운데 계기판을 장악하고 있는 듯 한데 동시에 도파민에 찌들도록 나쁜 방향으로 가속화 되고 있는 ‘기쁨’이와 함께.
영화 속 불안이를 보면서 시봉이 생각이 계속 났다.
너도 힘들겠구나.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건가봐.
기쁨이 줄어드는거
I don’t know how to stop anxiety. Maybe we can’t.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el less joy.
영화 속 불안이를 멈추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기쁨이가 다른 감정들에게 성을 내기도 하고 울적한 얼굴로 위의 대사를 하는데 아마 대다수의 어른들은 저 문장에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았을까.
내 마음 속 계기판은 기쁨이 보다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버럭‘이가 가장 큰 차지 하고 있지는 않을까. 가끔 추억할머니가 방문해 주시기도 하고.
주자매의 사춘기 폭풍이 잘 지나가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보면서 나 역시 내 마음속의 불안이를 잘 다스리고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불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