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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500페이지 문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by 와락 202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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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운 님이 내 알고리즘에 있어 종종 영상이 뜨는데 이번에는 신형철 평론가님과 함께 나오셨다.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영상 제목이다. "500페이지 문학에는 있고, 요약본에는 없는 것"

 

 

AI가 써주는 글, 매끄럽다 못해 미끄러운 글 앞에서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지만 인간의 '야생성'이 있는 글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내 글은 투박하고 야생성만 넘치기만 한 것 같지만...) 

 

 

작년 연말부터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있다. 

한 동안 경제경영서 중심으로 읽다가 소설을 읽으니 마음이 몰랑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창 소설책을 탐독했던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다.

당시에는 잘 이해가 안 되어도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어요 라는 허세 때문에 책 등이 일부러 보이게 마구 읽어댔던 책들이 있었다.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책과 라디오가 있으면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았다. 

 

 

마흔 중반이 되어 다시 사춘기 시절처럼은 안되더라도(이젠 빨리 읽을 수도 없다. 심지어 노안이 와서 읽기까지 버퍼링의 시간도 필요하다) 뇌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애써보는데 문학책을 읽는 것이 현생에 큰 효용은 없는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할 것들이 너무 많다. 영어책 읽기, 재테크/경제경영서 읽기, AI관련 스터디 영상 보기 등 (물론 해야 할 리스트에는 있지만 다 건너뛰고 책 읽기로 돌아온다)

 

이번 영상을 보면 500페이지가 넘는 문학책을 붙들고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부'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 '재미추구'를 넘어 평론가님의 말씀대로 다른 이를 'Under-Standing' 하는 태도로 살아 가기 위해서 말이다. 

 

 

인터뷰 내용 중 발췌 

 

왜 고전문학은 500쪽이 넘어갈까?


내면성에 대한 지식 혹은 감정에 대한 지식 이런 것들이 근대적 장편 소설에서 가장 잘 생산이 되는데  그것들은 감정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 경로가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맥락 속에서 과정을 통해서 생산되고 이해되는 게 감정이란 말이죠
그 불가피한 과정을 다 담으려면 500쪽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500쪽으로 쓰려고 쓴 게 아니고  감정에 대한 인지적으로 가장 고차원적인 지식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필요했던 분량이었던 거예요. 

중요한 건 전체를 다 봐야만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캐릭터 자신이 끝에 가서야 자신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기 때문에 독자도 그걸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해한다는 말이죠 

앞으로 긴 소설을 다 읽지 않고 요약해서 보게 되면 우리가 기대하는, 소설에 기대하는 바로 그것을 효율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못 얻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선택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타인을 경유하는 문학은 왜 필요할까?

정서적 공감이 잘 안되는 순간이 오히려 독서의 시작일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은 일체화되는 거잖아요. 동일시되는 것. 인지적 공감은 동일시할 필요가 없어요. 
안 되는 상태에서 서서히 이 사람의 관점을 수용해 나가는 과정. 이것을 인지적 공감이라고 따로 부르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 뭐야? 이 사람 이해가 안 돼' 이랬던 사람이 최종적으로는 '이럴 수도 있겠구나 사람이라면'  좋은 작품은 그걸 하게 만들죠. (이 구절에서 몇 몇 캐릭터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도오루', 고리오영감의 '라스티냐크' 등,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프랭크와 코라' 등)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편지를 읽을 때 처럼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어떤 지점인 거예요.
내 감정은 이걸 거부하고 있어요.  그때 정의를 생각해야 되는 거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다 살 수 없는데  저 경험들을 내가 과연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관점이 조정이 돼요.  좋은 독서의 바람직한 결론이죠.  (이 부분은 이전에 이동진 평론가님 이전에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윤리'가 떠올랐다. 편향되지 않으려 되짚어 보려 노력하고 관점을 조정해 가는 것)


우리의 문학 독서의 결론도 결혼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그 사람을 혐오하지는 않게 되는 수준

그게 필요한 것이고, 오늘날 문학 독서의 효용일 수 있겠죠.


다른 독서는 Standing Over를 하기 위해서도 필요해요. 
자연재해에 대한 연구는 이겨야 하는 거니까 의학도 이겨야 되는 거고

 

그런데 적어도 인문학 혹은 문학에 대한 독서는 내가 모르는 타인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지게 되는, 질 수 있게 되는 자리로 가는 것 그게 필요하지 않을까 

점점 더 질 수 밖에 없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