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미란에 당당히 '베이킹'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주 2회 이상 빵을 굽고 있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간식을 주겠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광고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주자매와 하하호호 깔깔 거리며 같이 쿠키를 굽겠다는 그림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시작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밤새 발효되어 밀가루를 살살 뿌리면 애기 궁둥이 같이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반죽의 느낌이 너무 좋아

빵이 떨어지게 무섭게 반죽을 치대고 있다. 

3주 전에 구매한 강력분 3kg가 다 떨어졌다고 하자 남편은 깜짝 놀라는데...

다 어디로 갔냐구요? 당신과 나와 주자매의 뱃살로 이동했지요. 

 

페이보릿 유튜브 선생님은 저 멀리 미국 시골에 사시는 50대 갱년기 언니시다. 

반죽도 설렁설렁, 쉽게 만드는 듯 싶은데 '짜잔' 하고 빵이  오븐에서 툭 하고 나오는 걸 보면 너무나 신기하다. 

 

 

우리 집에서 '요리'와 관련된 나의 포지셔닝은 '노력하나 잘하지 못함' 수준인데 

베이킹을 시도한 이후로는 얼추 신기하게도 모양과 맛이 나오고 있어 다들 놀라워 한다. 

그리고 거의 다 먹는다. ㅎㅎ

 

어릴 때 실과와 미술수업이 제일 싫었던 나로서는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 그리 즐겁지는 않은데...

하라는 대로 레시피를 따르면 결과물이 나오는 베이킹을 즐기고 있다. 

 

 

 

 

마흔이 넘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있다. 

어쩌면 전에도 그런 시간은 가능했을 지 모르나 내가 그 '여유'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요리에 대한 효능감을 더 느끼고 있어 그것 역시 만족스럽다. 

어머니가 지방에 내려가신 후 3월 한 달간은 정말 카오스 그 자체였으나

현실에 맞게 수준을 조정하며 지내다 보니 아이들도 나도 적응이 된다.

쿠팡 잇츠와 배달의 민족에게도 일정 부분 감사해 하고 있고- 

결국,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떤 식으로든 '독립'을 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마흔 살에는 퍼즐의 즐거움을 알았고

마흔 한 살에는 베이킹을 시도 하고 있다. 

모닝빵과 식빵, 버터 쿠키, 머핀, 크랜베리 호두 깜빠뉴 까지 만들어 봤고

내 생일에는 나를 위한 '케이크'를 도전해 볼 계획이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재테크는 여전히 어렵지만 관련 도서는 꾸준히 구매하는 중이다.

(읽지는 않아도 구매하면 마음은 편안...)

 

처음 시작은 스펀지 케이크로 ^^
아이들과 쿠키도 굽고 
첫날 만든 버터쿠키, 설탕이 많이 들어가는 걸 보고 경선생은 밖에서 과자 못 사먹겠다고 했지만...엊그제 나는 보았다. 경선생 가방 안에 있는 과자봉지를...
머핀도 만들어 보았지. 머핀틀과 구매하고 머핀종이도 구매하고. 베이킹은 장비가 중요한 것 같다.

 

 

처음 만든 크랜베리 호밀 깜빠뉴. 크...내가 이걸 만들다니.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었다구!! 자랑스러운 나 ㅋㅋ

 

고심 끝에 식빵틀을 구매하고 처음 만든 우유식빵. 

 

 

 

 

 

 

 

 

 

 

 

 

 

 

Posted by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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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훈 : 그냥 …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겸덕 :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뤄 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아니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 말해봐라. 널 위해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아니 누가 누구한테. 그지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박동훈 : 다들 그렇게 살아 
겸덕 : 아유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 그래. 그 소리에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테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뒤늦게 넷플릭스에서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인생은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라고,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아저씨 박동훈.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의 내력은 어떤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거리는 것 같은데... 

 

 

잘 살고 있다. 

어떨 때는 외력에 지지 않으려 버티며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박동훈 처럼,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계속 진자처럼 이동한다.

'어떤 인간이다'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복달 하다가도

천년만년 살건가. 어차피 한 줌의 재가 될 텐데...모든 것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이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마흔 한 살이 되었다. 

 

 

지난 연휴 전에는 석화를 먹고 노로 바이러스에 걸려 고생을 했다. 

친정어머니, 나, 경선생까지 셋이 걸려 연휴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 

정말이지 모든 것을 비워낸 듯한 느낌이었다. 

약 열흘 간의 고생 끝에, 수액을 두 차례 이상 맞고 서야 회복했는데 그 이후로 좋아하던 커피마저 끊게 되었다.

한 껏 비워내면서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쓰레기

불안, 조급함, 서운함, 한껏 힐난하고 싶은 마음도 같이 배출되었던 듯 싶었다. 

회복되고 나서는 몸도 마음도 조금 편안해졌으니. 

 

 

어릴 때는 마흔의 나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마음의 그릇도 넉넉해 지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린 친구들한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그렇지 않구나. 아직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소녀도 청년도 아닌 내가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있다. 

 

 

얼마 전, 남편이 결혼기념일 뭐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

떠오르는 것이 없어 어머니께 드릴 공청기를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를 누르면서 지내서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나의 욕구를 누르면서 장바구니에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물품으로 채우는 것으로 

'희생'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건 아닐까.

 

 

나부터 행복하기 위해

대학원도 다녔고, 이직도 했고,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행복'은 모르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여전히 더 갖고 싶어 욕망하고, 현실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물으면 대답조차 제대로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주자매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인생.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나부터 행복해지기.

희생 대신 선택이란 단어로 바꾸기.

그럼에도 뽀얗게 쌀뜨물 같은 미세한 감정이 올라오면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기.

마흔 한 살의 숙제다. 

 

 

 

 

 

 

 

 

 

 

 

 

 

 

Posted by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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