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듯 읽는 책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내게 있어 그의 작품은 독서나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 차라리 매혹의 대상이다. 그의 소설은 강한 흡입력과 감미로운 도취감으로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남진우 (시인, 문학평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군조신인상을 타게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수상이 없었다면 그는 이후 소설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했다. 스물 아홉의 하루키. 노르웨이 숲의 전신이 이 책이었던가. 익숙한 캐릭터와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하루키의 책을 순서대로 읽으란 법은 없지만 초기 작품을 먼저 접하고 다른 책들을 읽었더라면 그의 세계에 대해 좀 더 이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비현실 그 경계 어딘가에 있는 듯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조지 엘리엇의 『 미들마치 』의 여운이 가시기 전이라 그런지 180정도 되는 페이지의 글을 읽으니 다 읽고나서도 당황스러웠다. 이게 끝입니까? 그렇지만 이 다음 작품도 다시 찾아 읽을 것 같다.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까지는 '쥐'라는 친구 캐릭터가 계속 등장한다고 한다.
남진우 평론가님의 글처럼 하루키의 소설은 연애하듯 읽는 책인 듯 하다. 청춘, 맥주, 여름, 뮤직(재즈든 클래식이든 팝송이든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와 멜로디가 글을 읽는 내내 둥둥 떠다니는 기분. 읽고나면 가끔 허무한 기분도 들지만 책을 펼치면 그저 빠져들게 된다. 하루키가 언급하는 소설 속 음악은 한 번씩은 찾아서 듣는다. 이 책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글렌 굴드 연주. 작년 한해 글렌 굴드의 베토벤 소나타를 듣고 열심히 연습한 나로서는 반가웠다.
1970년 8월 8일부터 8월 26일까지의 18일간 주인공 '나'가 방학기간 동안 고향인 항구도시로 돌아와 친구인 '쥐'와 함께 동네 작은 바에서 계속 맥주를 마셔대는 이야기다. 어느날 새끼 손가락이 없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는 그녀와 관계가 이어지는가 했지만 그건 아니다. 이후 다시 찾아가 보지만 흔적도 없이 그녀는 사라졌다. 젊은 날의 격정적인 시간을 보낸 뒤 밀려든 허무감과 깊은 상실감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너무 나이가 든 탓일까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가 출판된 후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 작가의 말 중에서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했다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이 이후에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하루키처럼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졌다'고 해서 소설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공 '나'가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을 언급해서 이 다음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즐겨찾기 해 두었다. 『1973년의 핀볼』읽기 전에는 완독을 해야 될텐데 말이다.
밑줄 그은 구절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p11 (하루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문장.. 진짜 원문에서 읽었다...)
우리가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어떤 긴 잣대로도 그 깊이를 측정할 수가 없다. 내가 여기에 기록할 수 있는 건 단지 리스트일 뿐이다. 소설도 아니고, 문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 한가운데에 선이 한 줄 그어진 노트 한 권이다. 교훈이라면 조금은 있을지 모르겠다. p17
모두가 잠든 새벽 세 시에 부엌 냉장고를 뒤지는 사람은 이 정도의 글밖에는 쓸 수 없다. 그게 바로 나다. p18
열어젖힌 창문으로 바다가 아주 조금 보였다. 작은 파도가 막 떠오른 햇빛을 반짝반짝 반사했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지저분한 화물선 몇 척이 지겨워 죽겠다는 듯이 떠 있는 게 보였다. 무더운 하루가 될 것 같았다. p40 (화물선 몇 척이 지겨워 죽겠다는 듯 ㅎㅎㅎ 이 문장 너무 귀엽다. 그리고 바로 사진처럼 연상된다)
내가 세 번째로 잤던 여자는 내 페니스를 “당신의 레종데트르(존재이유 : 옮긴이)”라고 불렀다. p106(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논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당신의 레종데트르'가 언급되었는데 ㅎㅎ 아는 사람만 웃을 수 있었겠군요.)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p169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신주쿠에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왔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래 줄곧 일에 쫓기는 나날이어서, 글자라고는 세금 신고 서류나 가끔 쓰는 편지를 제외하면 거의 써본 적이 없었다. 거드름을 피우는 게 아니고 정말 그랬다. p180(이번 겨울 도쿄를 가게 되면 신주쿠에 가서 기노쿠이야 서점을 가볼까. 가서 나도 문구를 사 와볼까. 아주 잠깐 생각했었다.)
1978년은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우승한 해다. 나는 봄에 쓰기 시작해서, 우승이 결정되기 전후에 완성했다. 진구 구장 바로 옆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곧잘 시합을 보러 다녔다. 야쿠르트는 29년 만의 첫 우승이었고, 나는 스물 아홉 살이었다. 물론 마쓰오카도 선전했고, 와카마쓰도 그랬다. 그런데 그 시즌에는 후나다나 이세나 힐튼 같은, 이미 전성기가 지났거나 혹은 자질 면에서 일류라고 하기 어려운 선수들까지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크게 활약했다. 모두들 열심이군, 나도 열심히 해야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테이블 앞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글을 썼다. 매일 조금씩 단락을 지어, ‘오늘은 여기까지’란 식으로 써나갔다. 문장이나 각 장이 단편적인 것은 그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p182
나는 좀 더 심플하게 쓰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심플하게. 심플한 언어를 쌓아, 심플한 문장을 만들고, 심플한 문장을 쌓아, 결과적으로 심플하지 않는 현실을 그리는 것이다(그후 레이먼드 카버를 번역하면서, 그가 하고자 하는 것도 나와 같은 시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 p18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가 출판된 후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p1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