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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리뷰]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by 와락 2026.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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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김약국의 딸들
  • 저자 : 박경리
  • 읽은 기간 : 2026년 08월 16일 ~ 08월 22일
  • 주요 내용 : 구한말 조선부터 일제강점기의 통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비극적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김약국은 어려서 비상을 먹고 자살한 모친 때문에 대가 끊어질 거라는 저주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실제 첫아들은 잃고 딸 다섯을 얻었다. 첫째 용숙은 과부가 되고 셋째 용란은 머슴 한돌이와 사랑을 나누다 발각되고 아편쟁이이자 성불구자에게 시집을 간다. 이후 학대를 받다 미치광이가 되고 아내인 한실댁은 사위에게 살해당한다. 넷째 용옥은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냉담한 남편을 찾으러 부산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가 침몰하여 아이와 함께 죽는다. 주변의 만류에도 김약국이 도전한 원거리 원양 사업은 배가 난파되면서 고초를 겪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 이후 위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둘째 용빈은 영특하여 유일하게 공부를 한 인물로  김약국의 신뢰를 받는 인물이다. 불행한 가족사에 이어 정혼자였던 홍섭에게 배신당하기도 하지만 운영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나간다. 다섯째 용혜는 언니 용빈과 함께 통영을 떠나 서울로 올라간다. 

 
 
『고리오 영감』 을 읽을 당시 '딸들이 참 너무 하더라고' 말하자 당시 사내 책친구였던 K가『김약국의 딸들』 은 읽었는지 물었다. 도파민 터진다고 꼭 읽어보라 권해서 알았노라 답했었다. 
 
책장을 펼치자 첫 문장부터 사로잡혔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간 적이 있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그 바다를 보면서 겁이 나기도 했고,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외국어처럼 들려 신기했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위성처럼 산재했던 섬이었던 것 같다. 당시 지명인 충무에 내려서 배를 또 타고 자그마한 섬으로 이동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난다. 차멀미 뱃멀미 끝에 도착한 섬에서 바라본 바다 색깔이 잊히지 않는다.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 통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깃든 문장이 곳곳에 보인다.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 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아버지의 고향인 '통영'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인지 박경리 작가의 문장들이 반가웠다. 
그렇지만 소설 속 내용은 어찌나 파격적인지 지하철 출퇴근 도서로는 적절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입부터 살인, 자살이 이어진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개에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을 따라 가느라 바빴다. 소설 속 최악의 빌런인 용란 남편 연학이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칠 뻔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읽었는가 싶어 박정민 무제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다. 김화진 소설가와 함께 리뷰하는 영상이었는데 그들 역시 용빈이 나오는 장면은 재미가 덜 했다고 한다.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주위에 있으면 혈압이 솟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그럼에도 소설에 등장하면 궁금해지고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용숙과 용란이었다. 대부분의 K장녀들은 오히려 넷째 용옥처럼 희생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 집 첫째 딸은 욕심이 그득그득한 팥쥐 같은 큰언니다. 늘 잔병치레에 시달리는 아들을 키우며 친정에 올 때마다 가져갈 살림이 없는지 욕심을 부린다. 말은 얼마나 얄밉게 하는지. 동네 병원 의사와 바람을 피우다가 영아 살해 혐의를 받지만 그 누명을 벗고서는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당당하게 살아간다. 심지어 야무지게 남편이 물려준 재산에 본인의 기지를 발휘하여 부도 축적하고 더욱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고 활보한다. 물욕 강한 이기적 캐릭터인 용숙은 마지막에 용란을 돌본다. 그래도 피붙이구나 싶어 용숙에 대한 이해가 생기다가도 그 와중에도 "아무래도 살림이사 묵은 기이 좋지"라며 집 안팎을 뒤지며 눈이 가는 것을 골라내는 용숙이를 보며 아 진짜 대단하다 싶었다. 
 
가장 격정적인 로맨스이자 비극의 주인공 영란은 어릴 적부터 집에 머물던 머슴인 한돌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남편인 연학에게 매질을 당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친정으로 찾아온다. 다시 한돌이를 만나게 되지만 남편에 의해 친정엄마와 사랑하는 남자를 잃게 되고 실성한다. 딸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고 본능에 충실한 대책 없는 캐릭터인데 안타까웠다. 차라리 한돌이랑 도망을 갔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딸이 결혼할 인물에 대해 알아봤더라면, 아편쟁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결혼시키지 않았을 텐데. 
 
 
희생적인 용옥도 너무 가여웠지만 가장 측은한 캐릭터는 한실댁이었다. 당시에는 결혼을 일찍 했으니, 아마도 한실댁은 지금의 내 나이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곁을 주지 않는 남편하고 살다 보니 부부간의 정이라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살아간다. 큰딸 용숙이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용숙이 과부가 됨으로써 한실댁의 첫 꿈은 무너졌다는 문장에 내 마음도 '쿵' 내려앉았다. 부모의 기대는 기대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니. 소설 내내 종종 거리며 딸들 뒷바라지하다 결국 미친 사위에게 죽임을 당한다.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모든 인생이 그렇잖아요. 중간중간 불행도 있고 … 인생은 물결 같은 것이거든요.”-1994년 10월 『토지』완간 기념 소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141410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집안의 비극적인 사건, 도깨비 집과 관련된 소문은 책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른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김약국(김성수)은 친정어머니가 비상 먹고 죽은 그 도깨비집 폐가를 다시 수리하고 딸 다섯을 낳아 산다. 근거리 어장을 운영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도 되지만 원거리 사업까지 도전하고 배가 난파하자 유족들을 나몰라 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진다. 가세는 기울어 파산하지만 끝까지 의연하다. 딸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용숙은 끝까지 당당하게 맞서고 용옥은 죽는 순간까지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 소설에서 가장 믿음직한 용빈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의지를 보인다.  
 
『김약국의 딸들 』에서 김성수와 용빈은 멸시당할 일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모두 '존재의 용기'를 지녔다 할 수 있다. 그들은 집안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는 일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자신의 참된 본성과 생명력을 긍정하고 지켜 나간다. 아버지로부터 '존재의 용기'를 그대로 물려받은 용빈은 자매인 용숙, 용란, 용옥이 차례로 불행한 일을 당하고 부모를 잃은 데다가 정혼자 홍섭에게 배신당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자신을 초극하여 더 나은 자아를 만들어 가고자 노력한다. /  김승종(수필가, 전 전주대학교 교수)
 
작품해설에 나온 '존재의 용기' 그리고 '운명의 초극'이란 단어가 인상 깊었다. 파란만장한 다섯 딸과 인생 전반에 걸친 저주와도 같은 비극적인 탄생을 받아들이고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김약국까지. 용빈이 통영을 떠나기 전 짐을 정리하다 찾은 편지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닐까 한다. "용빈이, 믿음을 잃지 말아요!” 단지 한 줄만 써 내린 편지였다.
 
 
 
 
밑줄 그은 구절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며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p9
 
이 밖에도 송씨에겐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 지난날 숙정의 미모에 대한 열등의식, 싸늘한 성격에서 자기를 손윗사람으로 대접해주지 않았던 일, 그리고 또 중대한 것은 영감이 성수에 대해 병적인 연민의 정을 갖고 있으며 김씨 문중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절대시 하고 있는 일이다. 딸자식일망정 내 자식을 제쳐놓고 조카자식에게 모든 것이 물려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흉사가 날 것만 같았고 성수가 있음으로써 숙정의 방황하는 혼백이 늘 자기 집안을 감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p43
 
그러나 두 달 후 송 씨는 죽었다. 죽을 무렵,
“비상 묵은 자, 자손은 지르지 않는다 카던데· · · · · ·.” p83
 
그러나 한실댁은 그 많은 딸들을 하늘만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딸을 기를 때 큰딸 용숙은 샘이 많고 만사가 칠칠하여 대갓집 맏며느리가 될 거라고 했다. 둘째 딸 용빈은 영민하고 훤칠하여 뉘 집 아들자식과 바꿀까 보냐 싶었다. 셋째 딸 용란은 옷고름 한 짝 달아 입지 못하는 말괄량이지만 달나라 항아같이 어여쁘니 으레 남들이 다 시중들 것이요,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리라 생각하였다. 넷째 딸 용옥은 딸 중에서 제일 인물이 떨어지지만 손끝이 야물고, 말이 적고 심정이 고와서 없는 살림이라도 알뜰히 꾸며나갈 것이니 걱정 없다고 했다. 막내둥이 용혜는 어리광꾼이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을 못 잔다. 그러나 연한 배같이 상냥하고 귀염성스러워 어느 집 막내며느리가 되어 호강을 할 거라는 것이다. 용숙이 과부가 됨으로써 한실댁의 첫 꿈은 무너졌다. p100
 
기두는 통영 수산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무식하지 않을뿐더러 수산업에 대한 지식과 야심이 있었다. 물을 벌떡벌떡 마신 뒤 기두는 두레박에 남은 물로 우둑우둑 얼굴을 씻는다. p101
 
용란이 시집가던 날은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모두 혼사 일로 우왕좌왕했으나 어장 일이 걱정되었다. 김약국은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집 안이 벌컥 뒤집어지게 김약국을 찾곤 했으나 결국 이 혼사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이 중구 영감이 신부의 아버지를 대신하였다. 신랑은 삐쩍 마르고 혈색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신랑이 달아서 하는 혼사라 했건만 눈알이 풀어지고 통 생기가 없어 보인다. “걸음 걸어가 어찌 허황타.” 윤 씨가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며 뇌었다. p157
 
“내사 점괘 나는 대로 말을 하요. 당신 집에는 잡귀가 우글우글하는구먼. 맞아 죽은 구신, 굻어 죽은 구신, 비상 묵은 구신, 물에 빠져 죽은 구신, 무당 구신, 모두 떠 들었으니 집은 망하고 사람은 상하고 말리라. “ p342
 
흔히 주색에 빠지고 방탕함으로써 인생을 죄 되게 보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탕아의 좌절 이상으로 죄악적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기를 위한 성문을 굳게 지켜온 이기적인 김약국이 지금 자기의 육체가 허물어져 가는 마당에서 어떤 마음의 반려자를 구할 수 있겠는가? p397
 
‘모든 일은 기정사실이다. 더욱이 죽음은 ······. 
용빈은 언제부터 자기가 운명론자가 되었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운명론자가 아닌 자기를 발견코자 한 것이 어느 노력에 지나지 못했었다고 깨닫는다.
‘똑바로 받아들이자! 기정이건 우연기건 나는 지금까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았었다.’ p433
 
전보를 재빨리 주워 읽은 서 영감은 순간 안도에 가까운 표정이 되었다. 용옥의 죽음은 그의 수치를 영원히 매장해 놓고만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이마빼기에 핏줄이 부풀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가책의 무서움 때문이었다. p471
 
“용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 거예요. 서울 바닥은 넓구······ 모든 것 잊으시구 ······ 아버지가 너무 외로우세요.”
“서울이라구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가?” 외롭다는 말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냐고 되묻는 말은 양반된 대화다. 그러나 용빈은 김약국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 424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깐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p483
 
미스 케이트가 영국으로 돌아갈 때 용빈에게 전해달라 하면서 편지와 같이 한실댁에게 주고 간 것이다.
용빈이, 믿음을 잃지 말아요! 단지 한 줄만 써내린 편지였다. p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