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 식탁에서 재기를 반짝이던 사람과 한 집에서 생활할 때 혹은 여러분이 좋아하던 정치가가 내각에 들어갈 때도 이처럼 신속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처음에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믿음은 많은 상태로 시작했다가 때로는 결국 아는 것은 많고 믿음은 없는 상태로 끝나게 된다.
- 미들마치 / 조지 엘리엇 -
9월 내내 미들마치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시대나 지금이나 결혼 후의 삶, 그 내밀한 감정선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퇴근하자 분주하게 빨래 돌리기, 개키기, 간단한 청소, 설거지 정리 등 움직이는데 돌아보니 지난주부터 집안일 관여도가 부쩍 낮아진 남편에게 한 마디 하니까 한 덩어리 남은 스테이크를 맛나게 구워주었다. 스테이크가 참으로 맛있어서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스텐팬으로도 태우지 않고 이렇게 소고기를 잘 굽다니 나로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
오전에 외부 미팅이 있어 마포 공덕에 다녀왔다. 공덕역 2번 출구, 번쩍거리는 황금빛 롯데캐슬을 지나 올라가던 언덕길. 경선생 어린 시절 그 언덕일을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그 새 더 많이 변했다. 내가 알던 공덕이 아니었다. 공덕 오거리에서 우리의 모닝이 시동이 꺼져 등줄기가 서늘했던 기억도 났다. 미팅 전에 잠시 근처 카페에 앉아 있으니 새록새록 예전 기억이 난다.
연애시절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남편은 결혼 후에는 나의 실수를 지적하는 감시관이 되었다. 미들마치에서 ‘도러시아’가 신혼 여행에서 펑펑 울며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그 장면을 보니 그 시절이 생각나는구먼.
아는 것은 거의 없고 믿음, 기대로 시작된 우리의 결혼생활은 햇수로는 18년째이다. 그때보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도 있다. 그래도 믿음의 크기는 커졌다고 해야 할까.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잔소리는 줄지 않는다.
마포 근처에 가면 옛날 생각에 그리운 마음이다. 신혼시절과 주자매 애기 때 머물렀던 그 시절 30대인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때 나를 만나면 무슨 이야길 해주고 싶나요? 코인과 부동산, 주식 이야기 제외하고 ㅎㅎ
아이들이 어리니 많이 이뻐해 주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 당시에 영어도 찔끔, 책도 찔끔, 마음이 분주했는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꾸준히 멈추지 말고 계속하고
나 자신도 사랑해 주기. 스스로 부족하다고 많이 자책하는데 마흔 중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음. 그러니까 그냥 그 시절을 즐기고 기뻐하기
어쩌면 이 말은 60대의 내가 다시 지금의 나를 돌아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