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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리뷰]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by 와락 2026.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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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 읽은 기간 : 2026년 08월 16일 ~ 08월 18일 
  • 주요 내용 : 사랑-실연-상실 주제의 무라카미 작품의 완결 편에 같은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메'인 나는 어린 시절 시마모토를 사랑했고 사춘기를 기점으로 그녀와 헤어졌다. 20대의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현재 아내인 유키코를 만나 두 딸을 낳아 고급 차와 별장까지 가진, 부족함이 없는 삶을 누린다. 어느 날 번창하던 사업이 잡지에 실리게 되고, 잡지를 읽은 시마모토가 찾아오게 된다.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시마모토에게 강렬하게 끌려 밀회를 즐기게 되고 어느 날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 후 갑작스레 시마모토는 종적을 감춘다. 극도의 허탈 상태에 빠지고 아내에게 모든 걸 고백한 후, 그녀와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집에는 오래 전 구매한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2권이 모두 있었다.
분명 이십대 혹은 삼십 대 초반에는 읽었던 책들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도서관에서 새롭게 출간한 책으로 읽었다. 
 
줄거리만 대충 보면 그저 그런 아침 드라마 내용인 옛사랑과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이다. 첫사랑을 잊지 못한 남자가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그녀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돌연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나서야 집에 돌아와 다시 아내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내용이다. 어디서 바람을 피우고 이렇게 '다시 시작해 보자며' 당당할 수가 있는가. 사춘기 자매를 둔 중년이 된 나는 더욱더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 전 어린 시절의 일이긴 해도 발정 난 수캐처럼 여자친구의 친한 사촌과도 애정 없이 '영문을 알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끌려'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구성이 매우 익숙했고 이전에 읽었던 '태엽 감는 새 연대기'와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뒤에 해설지를 보니  이 소설은 당초 <태엽 감는 새>의 일부로서 구상했었으나, 집필 도중 아내의 의견을 듣고 독립된 다른 소설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아아 그렇군요... 신형철 평론가님의 말씀대로  Under-Standing 하는 태도로 자세를 바꿔본다.
 
 
구성은 노르웨의 숲과 비슷하다. 나오코가 시마모토, 미도리가 유키코로 대체되었다. 단란하고 부유한 가정을 이루며 정말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 시절 순수하게 사랑을 나눈, 당시에는 그 감정이 사랑인지도 몰랐던 그녀가 나타나자 압도당하고 만다. 아내와 두 딸을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는데 시마모토를 만나자마자 충족되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성인이 된 후로 수술을 받고나서 말끔하게 교정이 되었고 한 번도 취업을 해 본 적이 없다는데도 고급스러운 옷차림이며 액세서리며 부유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어른 여성이다.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여성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고혹적인 몸짓, 매력적이면서 섹스에도 개방적인 그녀들. 참고로 성인이 된 이후의 시마모토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 밤 9시가 되면 주인공이 운영하는 바에 등장하는데 왜 그런 것인지도 나와있지 않다. 일상적이지 않은 존재인데 하루키는 자작해설에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단지 이 작품을 리얼리즘 소설로서 파악하기에는 역시 무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시마모토라는 여자가 어디까지나 메타포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일상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의 존재를 통해서만이 주인공 하지메는 현실이 아닌 과거의 울림을 유효하게 실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 시마모토는 실제로 있는가? 하는 것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가장 중요한 명제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녀가 실재하는 건지, 실재하지 않는 건지, 그것은 작가가 작품 속에 구체적인 답을 낼 문제는 아니다.~ 그녀가 실재하느냐, 실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독자 여러분과 시마모토의 사이에서 결정되어야 할 개별적인 문제인 것이다. 작품이란 어디까지나 개별성을 부각하는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하다." 

 
 

그렇다. 나와 시마모토 사이에 결정되어야 하는 개별적인 문제인 것이다. 
흠...그렇다면 나는 시마모토를 실재하는 존재로 가정하겠다. 그녀는 하지메와 동반 자살을 꿈꾸며 하룻밤을 보냈다가 그의 일상을 깨트릴 수 없다는 생각에 종적을 감춘 것일 테다. 이 책을 또 몇 년 후에 읽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권택영 문학평론가님의 해설에 따르면
 
'시마모토와 하지메'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단계에서 형성되는 자아이며, 이마고(Imago, 어렸을 때의 사랑의 대상이 이상회된 것)다. 어릴 적에 형성되는 이마고는 사춘기 이후의 삶에서 결핍을 충족해 줄 것처럼 보이는 완벽한 연인상이 된다. 그 이미지는 삶을 지배하는 엄연한 현실이면서도 잡으면 멀리 도망가는 신기루일 뿐이다.

시마모토는 하지메의 무의식이었다. 헤어진 후에도 늘 그녀의 그늘에서 살아온 하지메는 가정의 평화를 뒤흔드는 충동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쉽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런 '과거'라는 이름의 괴물이 빚어낸 절박한 위기에 부딪혔을 때 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이 소설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의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과거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떨치고, 하지메 부부가 화해와 재생의 다짐을 하는 데서, 그 구원의 해답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책이야말고 개인적인 색채가 농후한 작품이라고 한다. 결론 부분은 아내와 여성 편집자에게도 의견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 할 수 있을 때까지 여러 번 고쳐 썼다고 한다. 나의 의견을 구했다면,  아내에게 고백하는 부분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꿇고 사죄하는 대목도 넣으라 강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마지막에도 "내일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에 대인배 유키코 여사는 "당신은 아직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하지메는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은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보살이 따로 없구려. "그게 좋겠어"라고 대답하다니.
 
 
 
하지메의 결핍은 새로운 다짐을 했음에도 유키코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시마모토를 만나고 나서야 충족되었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지메보다는 확실히 덜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일단 고급차와 별장이 없고) 두 딸이 있고 내일이면 출근할 일자리가 있다. 
어린 시절 그렸던 어른 여성의 모습도 아니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 그 것은 내 마음 한 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지금도 어렴풋 '국경의 남쪽'을 떠올리며 어딘가에 있을 '아마도'를 그려보기도 한다. 좀 더 나이가 드니 이건 나 혼자만이 가진 어떠한 특별함이 아니라, 내 배우자 역시 그러지 않을까. 결혼 초기인 이십대에는 충만하게 서로를 채우리라 생각했지만 점점 나이가 드니 서로에게 100%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좀 쓸쓸하긴 해도 그 결핍을 다 채우려 하기 보다는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레스토랑의 예약석 팻말'처럼 그저 한 켠에 놓아둬도 되지 않을까. 
 
 
밑줄 그은 구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트> 라는 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 - 물론 시마모토를 제외하고 - 도 없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가슴 두근거릴 만한 일이었다. 나는 주위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정원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듣는 것이란 인생의 한 단계 로 나를 끌어 올리는 일이었다. p19
 
나는 시마모토와 만나지 않게 된 후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내내 생각했다. 사춘기라는 혼란으로 가득 찬 안타까운 기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 따뜻한 기억으로 격려받고 치유받곤 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그녀에게 내 마음속의 특별한 부분을 열어 두었던 것 같다. 마치 레스토랑의 구석진 조용한 자리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살며시 세워놓듯이 나는 그녀를 위하여 그 부분만은 남겨두었다. p29
 
필요한 것은 작은 일들의 축적이다. 단순한 말이나 약속뿐만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p52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악을 행하고자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동기나 생각이 어떻든, 나는 필요에 따라 제멋대로일 수 있었고, 잔혹해질 수 있었다. p73
 
모두 점점 사라져간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떤 것은 끊어져 버린 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떤 것은 시간을 두고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그리고 남는 것은 사막뿐이다. p122
 
나는 읽고 있던 책에서 얼굴을 들고 어리둥절한 채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때 무엇인가가 나를 탁 치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 속의 공기가 갑자기 묵직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흡인력이라는 걸 떠올렸다. 이건 그 흡인력일까? p128
 
만일 내가 손님이라면, 누구와 어떤 가게에 가서, 어떤 것을 마시고 먹고 싶어 할까? 만일 내가 이십 대의 독신 남성이고 좋아하는 여자와 함께라면 어떤 가게에 갈까? 그런 상황을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까지 상상해 가는 거야. 예산은 어느 정도일까? 어디에 살고 있고, 몇 시쯤까지 가게를 떠나 집에 가지 않으면 안 될까? 그런 구체적인 상황들을 수없이 생각하는 거야. 그런 생각을 거듭하는 사이에 가게의 이미지가 점점 명확한 모습을 띠게 돼. p154 =>이 구절을 읽으면서 캐릭터를 이렇게 고민하면서 설정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마케팅에서 고객/페르소나를 설정하는 부분인데 흡사했다. 하루키 작가는 이전에 가게를 운영한 경험도 있어서인가. 매우 구체적이라서 놀라웠다. 태엽감는 새에 나오는 삼촌과도 유사한 느낌이기도 하다. 
 
“있잖아, 하지메.” 그녀는 말했다.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종류의 일들은 되돌릴 수 없어. 한 번 앞으로 나가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지. 만약 그때 뭔가가 조금이라도 뒤틀렸다면 그건 뒤틀린 채로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마는 거야.” p217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어. 내가 안고 있던 뭔가 빠지고 모자란 결핍은 어디까지나 변함없이 똑같은 결핍일 뿐이었지. 아무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바뀌고,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톤이 바뀌어도 나는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어. 내 속에는 늘 똑같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그 결핍은 내게 격렬한 굶주림과 갈증을 가져다주었어. 나는 줄곧 그 굶주림과 갈증 때문에 괴로워했고,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괴로워할 거야. 어떤 의미로는 그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난 그걸 알 수 있어. 나는 지금 당신을 위해 가능하다면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리고 아마 난 그럴 수 있을거야. 쉬운 일은 아니더라도 난 노력해서 어떻게든 새로운 나를 성취할 수 있을거야. p308
=> 이 부분이 핵심이겠지. 이 결론을 내느라 여러 번 고쳐 쓴건 아닐까.
결핍 그 자체가 나 자신이며 노력해서 새로운 나를 성취할 수 있을거라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