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77페이지 보고서를 앞에 두고 야근을 하려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그렇지만, 구내식당에 친절하게 소개된 미국산 닭고기로 만든 매운닭갈비 따위는 먹고 싶지 않아
마플로 저녁드실분을 모집하니, 팀장님이 치맥을 권하신다.
잠시 망설이다가, 1시간 내에 깔끔하게 먹고 오자는 제안에 발길을 재촉.
가지 않겠다는 동료 등을 떠밀며 move move. 후라이드 하나, 양념 하나. 생맥을 말끔히 비우고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이 (혹 팀장님이 아닌 그 누구라도) 시키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나이,즉 연차가
되었다. 제때에 리포팅하고, 데이타에 담긴 인사이트를 도출해야 하는.
시키는 일만 해도 칭찬을 받고, 혹은 혼이 나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 아주 예전에.
업무실력도 연차에 비례했는가. 그렇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그 옛날 대학다닐때 보던 드라마에서는 회사에서 늦은 시각 실장님과 야근을 하고 있으면 잘 생긴 남자친구가 꼬옥 초밥 도시락을 사들고 오던데. 그래 그건 드라마였으니.
자자 야근모드로
다음 뮤직에 노래들을 리스트업 하고.
청아한 르커플의 노래를 시작으로, 버스커버스커,이한철, Police, 줄리 델피
음악은 충전되었고.
워드와 피피티를 열자꾸나.
하늘은 흐리고,
맛없는 맥주덕에 트림은 계속 나오지만
고요한 사무실에서 리듬감 있는 자판소리를 들으니
썩 나쁘지는 않다
지금은 아내,엄마,딸의 이름이 아니라
직장인, 마케터, 회사원, 과장의 이름으로 자리에 앉아있으니 말이다.
그러나저러나 빨리 하고 집에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