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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by 와락 201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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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회사 도서관에서 '발견'한 단편 소설집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주말 내내 아껴가며 읽었다.

 

12월 한 달 동안 북클럽 활동 한다고 '총.균.쇠'에 매여 있었더니

(크리스마스 바로 전에 차례가 되어 얼마나 맘 고생을 하였던가)

 

간만에 읽은 단편 소설집은

가뭄에 단비 내리듯 촉촉하게 나의 뇌(?)와 마음을 적셔 주었다.

 

 

10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인데

김영하 작가님이 팟캐스트에서 추천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읽으면서 왜 그가 추천했는지도 알 것 같고.

 

옮긴이의 말처럼

앤드루 포터는 단순하고 절제된 일상적인 언어로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작품을 원서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금방 포기.

(그 시간에 다른 작품을 읽어보는 게 어때)

 

소설 전반을 흐르는 감정은 '상실'이다.

'슬픔'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매우 부족하다.

작품을 오며 가며 동일하게 반복하는 구절이 있다.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장치이겠지만-그래서 이 소설집의 각각 단편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 관계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갖게 된다.

 

 

속죄의 이언 매큐언 처럼

인물에 대한 묘사를 보석 세공사처럼 하는 것도 아닌데

각각의 소설 속 인물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내 눈은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지만, 내 머리속에서는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기이한 느낌.

 

 

특히, 소설집의 대표격이 되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헤더는 나도 모르게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여배우로 지정해 놓았다.

그 소설이 주말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를 요즘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머리속에서 계속 둥둥 떠다니는 영화 스틸컷 같은 장면들.

 

특히, 이후 로버트의 죽음을 알고

화단에서 통곡을 하는 헤더를 보면서 어찌나 감정이입 되던지.

 

 

무심코 집어 든 소설 책 한 권이

계속 마음을 울린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을 알았지만

그 사람 곁에 연인으로 머물 수 없다는 것.

 

 

월요일 아침이 밝아오는데

계약서와 기안을 마무리 해야 하는데

아직도 헤더와 로버트의 감정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니.

 

 

 

 

 

#밑줄 그은 구절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차 안의 침묵 속에서 나는 거리감을, 몇 년에 결쳐 서서히 우리집의 어둠 속에서,

우리 사이에서 자라고 있던 거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뜰로 나가 통곡했다. 나는 지금도, 콜린이 내 통곡 소리를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p 126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이 두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그 동안 우리는 유산, 파산지경, 그리고 시부모님의 죽음을 지나왔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없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p128

 

 

 

 

< 머킨 >

 델핀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좋아하기는 힘든 유형이다. 내 관점에서는 옹호를 하기가 버겁다.

나는 그녀를 야유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녀를 응원하지는 않는다. p190

 

-> 결국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상대를 응원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투로

    그럼 저는 이만. 스러운 표현이라 마음에 들었다.

 

 

 <강가의 개>

  잠시 후 칼러 씨가 집에서 나오더니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그것은 이후 좀체 내 마음을 떠날 줄 모르는 말이다- 그는 말했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p158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저자
앤드루 포터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03-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언제고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어느 순간. 그 기억을 품지도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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