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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by 와락 2017. 9. 4.



이다혜 기자님의 새 책은 빨책에서 알게 되었다. 

이동진 작가가 전문을 낭독한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글은 운전 중 들었는데

주자매가 좀 더 크면 꼭 소리내어 읽어주리라 다짐했었다. 



나는 다른 글도 좋았지만 

-  우리는 과거에 상상했던 미래에 도달한 것일까 

- 마흔 살의 내가 스무살의 나에게 

이 두 편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직장생활한지 햇수로는 15년차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되었고 월급도 예전과 비교해 올랐다. 

사회 생활 처음 시작 했을 무렵 시사회를 마치고 집이 아닌 회사로 다시 되돌아가서 야식을 먹고 믹스커피를 한 손에 들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끄적이곤 했다.(그 당시에는 아메리카노를 무슨 맛으로 먹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사무실 한 곳에서 경품을 정리하고 오늘의 숙제처럼 당시 클라이어트가 메일로 구구절절 지시하던 사항들을

프린터로 출력해서 완수할 때 마다 형광펜으로 칠하던 날들.


뚱뚱한 모니터 앞에서 상상했던 15년후와는 전혀 다른 지금의 나라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한 편 그렇게 고민하지 말라고 어차피 계획대로 쉽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기도 하다. 






쉽게 씌여진 글이라서 술술 읽히다 엇 하고 멈칫하는 구절들이 보이는데 그런 지점이 좋았다. 

종종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저 내가 또 예민하게 구는가 보다 하고 넘겼던 생각들.

내가 잘못 된 것이 아니었다는 위안과 더불어 저자가 권하는 책들을 더 읽어봐야 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녀가 오래 오래 일하시길 바란다. 

선한 영향력을 여러 곳에 끼치며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그녀의 '소녀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사회에 나가기 전의 졸업생들이 꼭 읽어야 할 글이 되길 희망한다. 

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 안되려나. 








인상 깊은 구절


내가 읽은 것과 경험한 것, 배운 것, 느낀 것 사이에는 늘 이해할 수 없는 틈이 있었다. 

아무도 그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무도 그 차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여자인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p12 



가능하면 오랫동안 일하세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의 행복과 소중함은 중요하지만, 가능하면 일하는 당신의 소중함도 

지켜가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오랫동안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랍니다. 

누구의 아내나 누구의 어머니가 된 뒤에도, 이름으로 불리는 관계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면서 여러분의 이름이 불리는 경험을 소중히 하기를 바랍니다. p92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때,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불편한 딱지나 낙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부당한 비난에 저항하고,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 비난을 무시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여성으로서 살아가게 될 수많은 나날에 가장 중요한 생존 기술이 됩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아주 작은 것부터 천천히,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그 사실을 어떤 순간에라도 기억하세요. p93



 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대체로 잊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엄마를 착취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p137



인생은 짧고 굵은 게 멋지다고 생각했던 스무 살의 나에게 마흔 살의 나는,

타인의 시선에 멋진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무 살의 나는 아마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구질구질한 건 싫다고.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고 마흔 살의 나에게 충고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여기 사람 있어요.

하고 누구에게랄 것 없이 구조 요청을 하리라. 시야 밖으로 밀어내지 말아주세요. 하고.  p164 




선택이 자유롭고 능동적이려면 일단 선택지를 가능한 한 넓혀놔야 한다. 

빈곤의 문제가 세대를 불문하고 심각해지는 시대에, 선택하라는 말은 얼마나 그럴듯한 허구의 이데올로기인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선택지를 가능한 한 조금씩 더 넓혀 갈 수 있기를.

그리고 원하는 것을 세상에 요구했을 때 그것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랄 뿐이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허용되도록 기성세대인 나부터도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전부다. p198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그것은 언제나 남성의 기록이었다. 

내가 배운 모든 것은 남성의 역사였다. 이것을 이해하는 법을 진즉에 배우지 못했다면 벌써 사회에서 

생존이 어려웠겠지. 하지만 그 결과, 여자다운 것이 남자에게 받아들여지는 틀 안에 있지 않다면

배척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p225 




내가 스무 살 때 배웠던 몇몇 좋아 보였던 가치들이 이제는 낡게 보인다는 점이 기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더 많은 것들이 좋아졌고, 나 자신이 더 멀리까지 왔다는 믿음이 생긴다. 

동시에 지금의 내가 믿고 있는 가치들 또한 매번 점검하고 업데이트 혹은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닿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과거의 인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지금 이 시점에서의 고민, 옳다고 믿는 것들을 책에 쓰면서 가까운 미래에는 이 책에서 하는 말이 까마득한 

옛날 일로 느껴지기를 바란다. 그러니 되뇐다. 가이드 없음. 전진 가능. p231













덧붙여...

옛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10여년 전 종로의 한 극장 앞에서 만난 이동진 당시 조선일보 기자님 생각도 난다. 

그때도 라디오 패널로 인지도도 높고 친정엄마도 영화 컬럼을 찾아 읽으실 정도였는데  

그런 분이 시사회 진행을 직접 하러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차분한 자세로 자리에 착석해 출력해 온 명단을 펼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벤트에 응모한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시사회표를 나눠주시곤 했는데 참 멋있었다. 

그때도 혼자 감동했었는데 작은 일도 정성을 다하던 그 분이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