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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자기연민, 이젠 안녕!

by 와락 2018.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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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님은 아직 고등학생 같아요. 

제가 볼 때 그것은 자기 연민 인데요. 빠져 나오질 못하시네요. 

                                          




집단상담 수업 중에 받은 피드백이다.

살아오느라 애썼다. 고생이 많았다. 앨리스님을 보니 나의 지난 날이 떠오른다. 등의 피드백도 들었지만

'자기연민'에 빠져 있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귀가 멍해지면서 

다른 조언과 격려의 말들은 들려오지 않았다. 



제가 볼 때 앨리스님은

자기 연민에 푹 빠져 자기와 비슷한 처지거나 자기가 챙겨야겠다고 싶으면 엎드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항상 즐거운 마음은 아니죠. 뭔가 부대끼고.  

왜 그런걸까요. 그 사람을 위해서인가요. 

아니에요. 다 자기 연민이에요. 

내가 너무 불쌍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바로 자기 자신을 투사하는 거에요. 



자꾸 아버지 이야기 하시는데

이미 결혼하고 아이도 있으신 분인데 왜 자꾸 아버지 이야길 하시는 걸까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지금보다 나아졌을 거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앨리스님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면 지금과 크게 다른 삶인가요?

그렇게 살아야만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건가요?





자기 연민이라니..얼굴이 화끈거렸다. 

집단 상담을 수십년 하고 계시는 권위 있는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지만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고.

늘 기꺼이 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에 대한 나의 노력과 희생을

자기연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집에 돌아오면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도 계속 생각했다. 

그 동안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혹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겉으로는 괜찮다며 했던 모든 일들이 

어쩌면 '자기연민'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마리가 풀리는 듯 싶어 놀랍기도 했지만 곧바로 비참하고 울적했다.

정말 얼마 있지도 않은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자기연민.

일단 그 감정을 버려 보기로 했다. 

물론 사람은 잘 안 변하니 쉽지 않을 것이지만-

질주하는 마음을 바로 잡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자기연민'을 앨리스의 '선택'으로 대체하면 힘이 나지 않을까.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무엇을 했다. 로 정리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실제로 괜찮았던 적도 한 두번은 있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비참한 앨리스가 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 





'누군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혹은 내 마음의 동요로 할 수 없이' 

수동의 힘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주도적으로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할 수 있는 범위를 무리 하지 않는 선에서 정해보기로. 

정지, 오양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넓히는 교제도 하고(교회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부탁'인데 이것도 시도하는 중이다.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오나시처럼 자기연민이 나를 계속 따라다닐 것 같다. 

너는 나를 벗어날 수 없어라면서.

으으윽 몸서리가 쳐진다. 

 

자, 이제 그만 헤어집시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