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매일

현을 팽팽히 조이지 않아도

by 와락 2018. 7. 20.
반응형

"현을 팽팽히 조이지 않은 채 그것을 끊으려 해 보십시오. 대단히 힘들겠죠.

하지만 현을 최대한 팽팽히 잡아당긴 후 그 위에 손가락만 한 추라도 올려놓으면,

현은 결국 끊어지고 말 겁니다." 

                                                                     <   안나 카레리나 1권 중에서 >





아이들이 오려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금요일은 그리기  방과후 수업이 있어서 평소보다 늦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로운 금요일 시간도 오늘로 끝이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방학을 하기 때문에(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바깥온도는 33도, 미세먼지는 나쁨.

선풍기를 이리 저리 돌려가며 바람을 쐬지만 덥기는 마찬가지.

오전에 도서관이라도 갈 걸 그랬나.


냉장고를 열어 탄산수를 꺼냈다.

맛은 다르지만 목넘김은 맥주를 상기시킨다. 

작년 10월 이후로, 한 잔씩 홀짝이던 맥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심리적으로 술에 대한 부담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노화가 다가오며 몸의 변화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마실 수가 없다. 

코 점막이 부풀어 올라 숨쉬기는게 너무 힘들어져서.

정말 슬프다. 



그런데 얼마 전 부터

삶의 낙처럼 느꼈던 커피 마저 예전 같지 않다. 

누군가 오후 2시에 시원하게 마시라고 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고 나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하기도 하고

아침 먹고 자리에 앉아 마시던 향긋한 아메리카노 역시 마찬가지. 

마시고나면 괜히 속이 미슥거리는 느낌. 불편해졌다.



마흔 전에 느끼는 이런 몸의 변화가 달갑지는 않다. 




5년 전에는 제주에서 안식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가끔 그때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고는 한다. 신기하게도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만약, 타임리프 해서 다시 돌아가면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새벽에 일어나 운동도 하고, 점심 먹고 동영상 강의도 듣고, 우쿨렐레도 연습하고

텃밭도 가꾸고 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서른 셋.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허기로 바쁘게 바쁘게 채워넣기에 급급한 날들.

하지만 그러한 팽팽한 현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현재의 나도 있는 것이고 

그런 나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나에게 이야길 해줄 수 있다면 

현을 살짝 풀고

주위도 둘러보고 시간을 좀 즐기어도 된다고 하고 싶다.

주자매도 많이 예뻐해주고(금방 커. 정말 눈 깜짝할 만큼 빠르게)


쓰고보니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다섯 번째 집단을 다녀왔다.

내 존재와 에너지를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었다.

호흡을 느끼고 내 몸 상태를 느끼는 것. 

평생 공부해야 할 숙제를 얻었지만 마음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