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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무튼, 달리기_김상민

by 와락 2022. 9. 9.

30일 달리기라는 타이틀을 걸어놓고 도전 중이다. 

왜 달리는 것인지, 꼭 30일 동안 연속 달리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달리면서 정리 중이라 아마도 도전이 끝나면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콩나물을 다듬다 달리기 유튜브 영상을 본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책이다.

 

저자의 위트 넘치는 글에 혼자 깔깔 웃으며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소장하고 싶어 알라딘 장바구니에 투척

 

아 이렇게 재미있는 구절을 카톡으로 보내면

기가막히게 내가 웃던 부분에서 낄낄 거릴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으려나요.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달리던 그날부터

5년 후 그럴듯한 러닝 복장으로 바뀐 달리기까지 한 편의 짧은 단막극을 본 듯 잘 짜인 구성에 감탄.

브랜드 마케터라 그러신가. 에세이도 지속적으로 쓰시는 분이었구나. 어쩐지.

정말 최근 읽은 에세이중 가장 재미있었다. 

 

 

 

저자가 말한 대로 뒷동산에 오를 때도 에베레스트를 향하는 마음으로 풀세팅하는 민족  아닌가. 

호시탐탐 자본주의형 러너로 성장할 기회만 엿보고 있는 내게 

취미가 지핀 마음의 불씨를 지갑을 땔감 삼아 더 큰 불길로 태운 저자의 기록을 읽으니 안심이 되었다. 

특히, 달리기는 몸과 나누는 가장 솔직한 대화이므로 달리기를 위한 소비는 지름이 아닌 '내몸학개론' 수강료에 가깝다는 구절에는 물개 박수를 치게 된다. 

정말 현명하시다. 

그래서 30일 연속달리기가 성공하는 그날

합리화를 머리에 꽂고 룰루레몬 매장으로 달려가 볼 계획이다. 

 

 

이후의 나의 달리기는 어떻게 펼쳐질까나.

마라톤대회 10km는 뛰려고 준비 중이다.

하프와 풀 마라톤 코스를 달리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집어 드면 구절마다 느끼는 감상이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 밑줄 그은 구절

 

 

이른 아침 마주치는 러너들은 한 명 한 명이 건강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성실함과 에너지를 재료로 인간의 형상을 빚는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해리 포터'에 비유하면 아침 러너는 그리핀도르 형 인간에 가깝다. 양(陽)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긍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p 17

 

심야의 뜀박질은 그때마다 나를 수렁에서 건져 올렸다. 뛰는 순간만큼은 근육부터 호흡까지 몸의 변화에만 집중하며 생각을 비워냈다. 멘털에 놓는 모르핀 주사처럼, 도무지 떨치지 못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달릴 때는 잠시나마 자취를 감췄다. 더불어 목표했던 거리를 어렵사리 완주해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자존감의 회복은 위대한 성과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성취가 금 간 마음의 빈틈을 메우고, 그런 성취들이 모여 단단한 삶의 방파제가 되어 준다. p19 

 

 

달리기를 시작하고 매일 밤 미숙함에 발목 잡혔지만 바닥을 뒹굴면서도 시선은 더 나아질 내일을 향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달리는 명분은 충분했다. 허술하지만 행복했다. p27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게 달리기 세계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삶에도 사람마다의 페이스가 존재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를 수도 혹은 느릴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우리는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내게 맞는 최적의 페이스, 다시 말해 가장 나다운 삶의 속도와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그 페이스로 각자의 크고 작은 목표에 닿기 위해 하루하루 힘겨운 레이스를 이어간다. p43

 

 

달리기는 하루하루 달라진 나와 만나는 일이다. 특히 막 달리기를 시작했다면 글자 그대로 '나날이'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첫 목표로 삼았던 5km 정복 과정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어떻게 안 쉬고 그만큼을 달릴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매일 한 계단씩 오르다 보니 불과 한 달만에 달성할 수 있었다. 한번 맛본 성장의 중독성은 너무도 강력했다. 목표 하나를 넘어서면 이내 다음 목표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내게도 목표, 성장, 성취, 다음 목표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p73

 

스스로의 발전을 피부로 느끼는 건 단순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는다. 지레 겁먹고 못할 거라 생각한 관문을 성큼 넘어설 때, 그렇게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지할 때, 어느덧 예전과 전혀 다른 태도로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냉소 대신 긍정 어린 시선을, 자조 대신 꾸준함을 신념 삼아 각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 여정의 끝에는 언제나 놀라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p79 

 

달리기 시작하면 식혜 밥알처럼 가라앉아 있던 온갖 생각들이 섞이고 뒤흔들린다. 그 과정에서 잠시 잊고 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거나 잘못된 곳에 묵혀 있던 마음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제야 정돈된 마음 사이로 고민이 또렷하게 정체를 드러낸다. p93

 

 

오늘은 텅 빈 머리로 여름과 가을 사이를 가로질러 달렸다. 여전히 한낮은 지긋지긋한 여름이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 여름의 공백을 가을바람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연의 꿈틀거림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매번 생경하다. 아마 그건 미동 없는 내 일상과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가던 마음이 달리며 조우하는 자연의 숨소리 덕분에 말랑해진다. 덩달아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던 생기 역시 다시금 호흡하며 살아나는 기분이다. p95

 

 

달리기는 순환의 고리를 그려가는 일이다. 우선 달리는 행위 자체가 양팔과 다리, 호흡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이뤄진다. 달리기를 취미로 삼는다는 건 이 반복의 움직임을 매일 반복함을 의미한다. 러너로서 그려나가는 궤적 역시 돌고 도는 순환의 이야기다. 10km에서 시작해 하프 마라톤, 최종적으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며 하나의 사이클을 완성한다. 그 뒤로는 다시 단거리로 돌아가 더 나은 기록에 도전하며, 또 한 번의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p155

 

 

헤밍웨이는 말했다. 진정한 고귀함이란 타인보다 뛰어난 것이 아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라고. p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