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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by 와락 2024. 2. 11.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긴 시다.  

은유작가의 추천글을 읽었을 때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적인가 보구나.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겼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여운이 길어 다시 또 페이지를 펼쳐 놓고 행간에 숨은 의미를 유추해 보고 있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문장을 두세 번 곱씹어 읽다 보니 감히 원서로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원서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요즘 뒤늦게 빠진 배우 킬리언 머피가 영화로도 제작하여 곧 개봉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기계적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 펄롱,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유한 어른의 후원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직업을 구해 가족들을 부양할 정도의 수입을 벌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창고에 갇힌 여자 아이를 발견하게 되지만, 아내와 지인을 비롯하여 모두가 그 개입하지 말라고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선택'을 하게 되는 이야기. 

 

120페이지 남짓 짧은 소설이지만 

몇 번씩 들추어 다시 문장을 읽게 된다.

 

 

짧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신형철 평론가님의 글 이상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의 가능성이 서사의 필연성으로 도약하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얻게 된다. 이 작가가 단편 분량의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런 결말 뒤에, 감히, 어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소설 주인공인 펄롱이라면, 혹은 그의 아내였다면

그러한 선택 뒤에 우리 가족이 받을 고통이 예견된다면 그래도 감행할 수 있으려나. 

스스로가 위선적으로 느껴져 괴롭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게 할 수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게 된다면 과연 할 수 있으려나. 

 

 

 

밑줄 그은 구절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p24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p57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p111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다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120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