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책 제목을 읽는 순간 작가님이 내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시나요 라는 생각이 들어
냉큼 집어 들었다.
출퇴근 지하철 타고 가는 동안 낄낄 거리며 즐겁게 읽은 8월의 책이다.
작가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고시를 준비했다. 이른 아침 도서관에 가서 법전을 뒤적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 중앙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던 그는 매일의 공부에서 버티지 못했고 몇 번의 미끄러짐 뒤에 평생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팔 때마다 물 한 통을 기부하는 공정 무역 카페를 열고 난 후에야 근처 카페가 70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2년 남짓 기간 동안 카페 사장으로 지냈다. 작은 테이블에서 감사와 막막함에 대한 글을 쓰며 버텨냈던 시간이었다.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카페를 접고 독서 교육 회사에 들어가 7년간의 회사 생활을 한 후 그 사이 몇 권의 책을 쓰고 팟캐스트를 올리고 온오프를 오가며 강의를 했다. 현재는 회사를 퇴사하고 1인 기업으로 본인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작은 카페의 사장님 시절부터 회사원으로 지내다 본인의 꿈을 향해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한 이후까지 '버티는 삶'에 대해 말한다. '축축하게 젖은 구두를 신은 채 먼 길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는'는 작가의 말처럼 원래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할 삶이지만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어딘가에도 축축한 신발을 신고 걸어가는 동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총 34개의 에세이 중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달리기'를 언급한 '하루키가 작정하고 시작하지 않았더라면'과
작가님이 검도를 배우면서 얻은 깨달음이 담긴 '딱 한번만 제대로 해 보세요' 챕터이다.
달리기나 검도나 우리 삶에 있어서도 딱 한번 제대로 해보고(기본을 갖추고) 0에서 1이 되기까지 부단히 그냥 해 보는 축적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열심히 하려 하지 않고 그저 꾸준히라도 해 보는 시간. 그 시간이 결국 쌓여야만 나오는 결과물이 있다.
'버티다. 꾸역꾸역 마감시간을 맞춰 해 낸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니 결과물이 쌓여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정승제 수학 선생님이 어록이 생각났다.
밑줄 그은 구절
버티는 사람은 늘 어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시작은 준비가 모자라고, 진도는 마음처럼 나가지 않으며, 종종 찾아오느니 원치 않는 슬럼프다. 원래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길이 있는 사람은 젖은 구두를 신고 계속 걸어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걷는 쪽으로 결정한 바에야 웃으면서 버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버티는 한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p15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그것에 대해 많이 알게 될 내일이 아니라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는 오늘이 아닐까.
완벽한 내일이 아닌 초라한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p41
훌륭한 작품은 Positive(긍정)을 향해 걷는 길에서 나온다. 사실 '형편없는 작품'쯤은 누구라도 내놓을 수 있다. 형편없는 작품을 Positive를 향해 질질 끌고 가면 '그저 그런 작품'이 된다. 그저 그런 작품을 고치고 다음으면 '보통의 작품'이 되고, 보통의 작품을 매만져 광을 내면 '제법 괜찮은 작품'으로 변한다. 제법 괜찮은 작품을 끌어안고 끙끙대면 '훌륭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운이 따라준다면 말이다. p59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평생토록 단 하나의 공조차 담장 밖으로 넘겨보지 못하고 살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홈런이 야구의 꽃일지라도 야구의 전부는 아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양준혁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1루까지 열심히 달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루까지 걸어서 가본 적이 없다." p79
노력하고 있다면 하루하루의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가까운 발밑의 바닷물은 늘 출렁거리지만 저 먼 곳의 수평선은 언제나 고요하니까.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늘 일기에 적힌 기록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과 방향이다. p84
자이가르닉 효과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뇌의 스위치를 계속 켜두어 그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힌트를 알려주었기 대문이다. 여기서 힌트는 보다 나은 아이디어, 보다 적은 슬럼프, 보다 괜찮은 기억력, 보다 높은 생산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탁월성으로 향하는 이정표다. p110
없으면 없는 대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 대단치 않더라도 한 걸음을 내딛는 것. 어차피 단박에 해결이 불가능하므로 역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브리콜라주가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기 시작하면 막혔던 에너지가 흐르고, 그러다 보면 왠지 일이 풀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운명의 바퀴가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p140
대신 써지지 않는 날에,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라도 꾸역꾸역 쓰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그것은 흔적이다. 무언가 붙을 붙여보려 했다는 흔적 말이다. 타다 남은 재일지언정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시간이 흐르면 재는 땅속으로 스며들고 언젠가 그 위에는 나무가 자랄 테니까. p155
사람은 절대로 강하지 않다. 가다가 말다가 하면서 손바닥 뒤집듯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절대로 어딘가에 닿을 수 없다.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언덕길에서 수레를 믿는 일과 같다. 내버려 두면 내려가기 때문에 제자리에서 편히 쉰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쉰다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은 퇴보인 이유다. p158
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누가 나를 집어다가 다른 산등성이 위에 떨어뜨려놓는 것인데, 그곳이 어디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산꼭대기를 향해 기어 올라가는 일, 그러면서 동시에 서로서로 연결된 산줄기들을 한눈에 보려고 애쓰는 일. 그렇게 하다 보니 언제나 이 산은 저 산과 이어지고, 저 산과 이 산은 한 몸이었다. 내가 머무는 곳은 바뀌더라도 그렇게 얻은 세상 보는 눈은 고스란히 나의 것으로 남았다. p170
감격은 무엇으로써 얻을 수 있을까. 귀한 것은 늘 그러하듯 감격 역시 공짜가 아니다. 인생은 주판알을 깐깐하게 튕긴다. 헐값에 넘기는 일조차 결코 없다. 반드시 지폐 한 장, 동전 한 닢까지 제값을 치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인생은 슬그머니 감격을 꺼내 우리 손에 쥐어준다.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