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위태로움과 절실함이 있는 것만 같다.
책 제목과 첫 문장에 끌려 읽게 되었다. 136페이지 남짓 얇은 러닝에세이인데 밑줄 긋고 싶은 구절들이 책장을 넘길 때 마다 나와서 읽는 내내 흐뭇했다. 저자가 운영하는 온라인 달리기 모임은 마감 된 듯 했고, 나 역시 달릴 때만은 내성적인 러너이므로 같이 뛸 날은 없을 듯 하나 마음 속에 러닝 메이트로 생각한다. 저 멀리 젊은 여성이 달리면 손작가님 같은 분일 수 도 있겠구나. 혹은 그녀를 응원했던 다른 랜선 동료이자 러너들일 수 있겠구나. 마음 속으로 힘주어 외친다. 끝까지 달려 봅시다.
민폐 러닝 크루들의 행포에 5인이상 달리는 것도 금지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왕왕 봤고 나 역시 무리 지어 달리는 게 부담스럽기도 해서 회사 동호회에서도 탈퇴했다. (훈련 목적으로 같이 달리기 선생님을 모셔서 레슨을 받은 적도 있는데, 달리기 속도를 무리에 맞추어야 한다고 계속 빨리 뛰라 하셔서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이삼십대를 돌아보면 회사 업무 종료 후 삼겹살 집에 가서 소맥을 마시던 그때 보다 지금의 30대 분들이 더욱 더 건강한 퇴근 이후의 삶, 주말을 보내는 것 같아 보기 좋다.
달리기에는 성별이 없다라는 챕터에 "저 여성 분도 나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으로 지금 치열한 자기와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구나. 여성 러너와 스칠 때 마다 나는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나 역시 그렇다. 보통의 여성 러너들, 가끔은 나와 같은 40대로 보이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면 반갑다. 간혹 빠르게 달리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 부럽기도 하고, 둠칫거리는 동작을 보면 비슷한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느려도 꾸준하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각자 개인의 삶도 그와 같이 꾸려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 밑줄 그은 구절
동네를 달리는 일은 온전히 자발적인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스스로를 일으켜보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행하게 되는 일이었다. 나는 내 작은 방안에서, 더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p12
시간을 들인 만큼 더 잘 달리게 되었고, 더디지만 결국 목표에 다다랐다. 내게는 그런 경험이 간절히 필요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는 일. 어쩌면 체념하는 모습이 아닌, 끝까지 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계속 달리러 나간 것인지도 몰랐다. p35
달리기를 타인과 나눠서 할 수는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가 나 대신 달려줄 수 없다. 내가 딱 내디딘 만큼만 앞으로 나아갈 때, 달리기는 철저히 나 혼자만의 일이 된다. p39
‘러닝 총량‘이란 지난 3년간 자연스레 발견한 나만의 에너지 충전량으로 일상을 무리 없이 보내기 위해 한 달 동안 달려야 하는 거리다. p44
내게 달리기는 일상을 흔들림 없이 잘 살아 내기 위해 에너지를 예열하는 일이다. 때로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상의 과업을 주저 없이 밀고 나가기 위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 삶을 잘 살아 내고 싶어 발버둥치는 일이다. p47
내가 또 다시 끈질기게 달리러 나간다면 그것은 절망하지 않고 부지런히 반복하는 몸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다. 믿을 수 있는 건 두 다리 밖에 없어서. 재능과 무관하게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달리기라서. p61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것도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은 달리기에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살아간다는 감각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과거를 뒤로 하고 시간 속을 달리는 일이다. p124
7킬로미터를 통과한 몸을 또 한 번 믿고 살아보려 한다. 연약한 자아가 튀어 나올 때면 또다ㅣ 달리기라는 부적을 써 내려갈 테다.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입는 것처럼 내가 내게 부여한 러너라는 정체성을 방패삼아 나아가야겠다. 용기와 기운은 셀프로 충전하면서.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