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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짜증을 내어서 무얼하나.

by 와락 201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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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월요일 아침,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으며 출근.

한강진역에 내려서 자꾸 떨어지는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고, 가을비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며 

회사에 도착. 수위 아저씨께 가벼운 목례를 하고 4층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탑승.

작년에 같이 일하던 다른팀 분과 마주치자 서로 어색한 웃음. '요즘엔 머하세요, 저는 다른팀으로 이동했어요' 별로 궁금해 하지 않을 나의 안부를 다 전하기도 전에 4층에 먼저 내리게 됨. 머쓱해진 얼굴로 담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 사무실 제일 끝에 있는 내 자리로 총총.


정산의 시기라, 오자마자 계산서와 결재품의 상신 문서들이 잔뜩.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업체에서는 입금이 안되었다고, 정산 담당자분은 확인해 달라고.

'휴-'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준비된 골기퍼처럼 요리조리 골을 막아내니 어느덧 점심시간.

점심약속을 한 분은 55분이 되어서야, 회의가 끝나지 않았다며 뒤늦게... 아악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2층이 넘치는데. 미친듯이 뛰쳐내려가 긴 줄 끝에 무려 10분을 서있다 5분만에 밥을 흡입하고 돌아옴.

점심 먹기 15분전, 업무를 지시하신 팀장님은 방긋거리며 커피 한잔을 권하고... 우린 알흠다운 이야기 꽃을 나누고 정확히 12시 50분에 자리에 앉아 빛의 속도로 피벗을 돌리다 수치가 안맞자, 남이 보면 부끄러울 합계를 내어 간단히 보고.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은 반의반의반의반도 시작못했지만.나는 곧 봐도봐도봐도봐도 정말 모르겠는 저작권관련 미팅에 가야 하는걸.



알수 없는 힘에 끌리듯, 저작권협회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뭔가 정리가 되는 기분에 개운해 지면서도, 내가 이렇게 또 빙하와도 같은, 끄트머리만 보고 코웃음치면 안될 그것에 빠져 들었구나라는 생각에 '행쇼'에 나온 24시간 타령사나이를 보고 싶은 생각만.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급식을 선보이는 2층에서 또 다시 흡입하고 자리에 앉아 메일회신만 했는데도 8시. 더 늦었다가는 엄마가 자아분열을 하시게 될테니. 어서 가야지.

등짝에 메면 거북이 같아 보이지만, 어쩔수 없이 놋북 가방을 메고 집에 도착하니 시성이는 열이 38도.주시경은 '엄마, 왜 이러케 늦었쪄. 내가 기다렸짜나.나 슬펐짜나' 라고 소리지르며 귤을 까먹고.



시성이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겨놓고, 힘들어서 누워 있는 아이를 한 번 안았다 바로 내려놓고

시경이를 씻기려 어르고 달래다 말을 듣지 않자 매몰차게 엉덩이를 때리고 '엄마 얼굴 무섭다'고 우는 아이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박박슥슥 씻기기 시작. 안겨 있겠다는 시경을 엄마한테 맡기고 시성이를 방에서 재우기 시작한게 9시 40분. 머리속에는 오늘 해치워야 할 업무들을 리스트업 하면서 손으로는 시성이를 토닥이고. 몸과 생각이 따로. 이런 따로국밥도 어디없지. 주시경이 놀다 지쳐 들어온 시각이 10시 30분. 겨우 둘을 재우려 하자 그제사 남편이 도착. 아. 겨우 재우려 했는데. 

두 아이들은 다시 리셋. 피가 거꾸로 솟는다. 자 다시 시작. 주시성을 재우고.... 주시경을 재우고 나니 11시 30분.



졸려졸려 너무 졸리지만.

눈을 부릎뜨고, 주방 테이블에 앉아 놋북을 키고 오늘은 꼭 해치워야 할 것들을 무섭게 째려보며 

자판을 두들긴다.  에피톤프로젝트와 언니네이발관이 이 밤을 함께 지켜주고 있어서.

하루는 길지만. 괜찮을 거다. 다 괜찮을 거다.



몇년 후에, 내가 이 글을 다시 보면서.

그래도 이때가 좋았지라고 되뇌일 수 있을까.



그래. 짜증을 내어서 무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