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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지금은 새벽 2시 반

by 와락 201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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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미팅을 하고 부리나케 집에 달려오니
폭삭 늙은 할머니가 두 아이를 보고 계셨다.
빨갛게 충혈된 눈, 헝클어진 머리, 창백한 얼굴, 작은 어깨, 굽어진 허리.
마치 나쁜 마녀의 계략으로 한 순간에 할머니로 변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아침에 보았던 우리 엄마보다 열배나 더 늙어버린 엄마가 거기 그렇게 서 계셨다.

순간, 
내가 뭐라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시간까지 미팅을 하고, 이러고 집에 오는건가. 라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세수를 한 후
시경이 어린이집 알림장을 확인하고, 두 아이 감기약을 먹이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내가 이렇게 방문을 닫아야
그제서야 조금이나 쉴 수 있는 우리 엄마.
그리고 나는 애들을 재운후 12시가 되는 시간에 일어나 다시 일을 하지.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일은 하면 할수록 늘어가고, 또 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안하면 찝찝하고, 하면 또 제대로 해야 할 것 같고,
이렇게 고.고.고.고 하다보니 또 새벽 2시.




김미경 강사님의 말대로
15년은 해봐야 하니까. 여자 비아그라는 못될 망정
적어도 내가 시작한 이일에서 중간에 객사하지는 말자.- 라는 비장한 각오로
일단 버텨보는 걸로.


오늘 시경이를 품에 안고 재우면서 조근조근 이야기 했다.
"시경아, 엄마가 오늘 늦게 와서 미안해.
그래도 시경이가 할머니랑 잘 있어줘서 엄마가 참 고마웠어.
내일은 빨리 와서 시경이랑 놀아줄게.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응"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는 시경, 살짝 패인 볼우물도 함께 따라 웃는 우리 큰딸.
"이해해줘서 나도 고마워" 말 배우기 한창이라, 무슨 말이든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참 예쁘기도 하지. 우리 아기 



그래,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주시경의 깨물어주고 싶은 보조개가 있으니
오늘도 버텨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