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진행되는 송년회.
바자회 및 게임, 신입공연 등의 깨알 같은 프로그램들로 준비되고 있던 중.
송년회 TFT 멤버 분의 거부할 수 없는 권유(?)로 -'아니, 왜, 대체, 내가 왜?' 라는 물음표가 머리위를 둥둥 떠다녔으나- 제주의 한 시간 짜리 사내 라디오 방송을 맡게 되었다. 말이 라디오지, 실제 방송실은 없고 방재실에서 차임벨과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정말이지, 나는 적지 않은 기간 회사에 다녔으나, 존재감이 거의 없는(내 생각에는) 팀원 나부랭이로서
이러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도 심적으로 몹시 부담이 되었고, 게다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TFT멤버들을 제외하고는 라디오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에도 모두들 시큰둥 할 듯 하여 투덜거리다 결국 전날 새벽까지 큐시트를 쓰고
(예상했던 대로 신청곡도 많지 않았음) 방송에 나오는 내 목소리에 스스로 위축될까봐 스마트폰으로 음성녹음까지 해가며 국어책 읽듯 영혼없이 큐시트를 읽다가 '아니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면 물 한 모금 들이키고, 자조적인 한숨을 크게 쉬고, '그래도 대망신은 피해야하지 않겠어'라는 굳은 결의로 멘트를 입에 달라붙게 고쳐쓰기를 여러 번.
사실 나는 11월 중순 쯤. 회사 우쿨렐레 모임에 가입하여 중고로 악기를 사고
곰 세마리와, 제주도 푸른밤 정도의 곡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 모임도 송년회에서 작은 공연(?)을 하게 되어 있어서, 기존 멤버분들을 따라 공연 준비를 나름 열심히 하고 있던 중이었다.
본의아니게 여느 해와는 달리 매우 분주한 송년회 준비를 하고
누가 뭐라든 어쩌겠는가. 라는 각오로 행사를 치뤘다.
방송이 끝나자, 정말 부끄러웠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 이어폰이 있거든' 정도의
쿨한 반응, 혹은 무반응을 보여줘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 여자분은 노래 소리가 무척 시끄러웠다고 총평 한 후, 황급하게 내 목소리는 좋았다고,
아니, 어쩔수 없이 집중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가. 되려 아연실색하게 만든 멘트를 날리시고.
송년회의 대미는 올해의 스타상 수여와 사내 복권 추첨이다.
올해 스타상은 프로젝트별로 받아서 예전과 같은 긴장감은 떨어졌다.
방송국에서 올해 최고 연기자 상을 2명의 후보에게 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스타상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으므로 열심히 박수 치는 박수부대로 최선을.
더불어, 복권 당첨과 같은 행운 역시 내게 찾아온 적이 없으므로 별기대 없이 앉아있는데,
왠걸. 익숙한 번호. 내가 갖고 있던 복권 3장 중 가장 첫번째 숫자와 내 사번을 호명하는 것이었다.
오오. 아니 이런 일이. 9년째 송년회에 참석하지만 난생 처음이다.
누군가는 주최측 아니야.라고 말했고(아닙니다. 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지만 상 받으러 가느라 몹시 바빴음)
옆에 동료는 하이파이브를 해 주며 축하해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운을 몹시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등을 추첨하느라 모두들 집중.
TFT멤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로, 감히 네 따위가 무슨 준비를 했다는 거냐. 라고 물으면
어깨만 으쓱해 보일 수준이지만, 기쁨과 허탈함. 즐거움. 낯뜨거움.민망함이 교차하면서.
한 마디로 말해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 송년회였다.
(모두들 그 방송은 잊겠지.
그럼, 잊어야 하고 말고.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