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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2013년 12월 31일

by 와락 201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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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






2013년 마지막 날이다. 팀장님의 배려로 (일은 밀려 있으나) 오후 퇴근령을 받아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넙죽 하고는 바로 퇴근을. 헤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평소 눈여겨뒀던 카페에 와서 레몬차를 주문한다. 

여기는 제주 신시가지의 여유 돋는 아주머니들의 아지트인 듯.

아줌마들의 수다에 익숙한 노라존스의 노래는 묻혀버리고, 주문한 음료는 레몬을 조금 더 넣는게 어떨까요.라고 정중히 요청하고 싶은 맛이지만, 2013년이 반나절도 채 남지 않았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패쓰. 





남편은 올 한해 

대학원도 졸업하고(그의 졸업 논문을 위해, 나는 1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었지... 후...)

원하던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도 하고, 

2년간 나의 자유시간을 갉아먹던 부동산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





나는

제주로 이사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초반에는 이직한 기분으로 불편한 옷을 입은 듯 했지만)

텃밭을 가꾸며 수박 부터 배추까지 다양하게 수확하고, 지난 달에는 내가 심은 배추로 김장까지 시도. 

골프를 배워 난생처음 필드도 나가보고, 우쿨렐레로 '제주도 푸른 밤' 1곡 뿐이지만 연주도 해보고. 

유아독서지도사 과정도 수료하여 곧 자격증을 받게 될 예정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더라도 곧 허탈감이 밀려오고, 깊은 우물 속에 빠진 기분이 들지만

내세울 것이라고 '근성' 하나 뿐이고, 나와 연애하듯 끊임없이 밀당하는 두 딸들에게

언제나 활기차고, 매사 즐겁게 도전하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 그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건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계획을 세우는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그냥 나는 하루 하루를 잘 살아가 보려고 해.

내년에는 운동 좀 하고 영어 공부, 책을 좀 보려고' 

 

늘 새해 계획을 세우라고 채근하던 남편은

지난 주,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2개 겹쳐 소맥을 제조하여 아내 앞으로 다정히 밀어놓으며 

몇 년 후 건축사 시험을 볼 예정이며 그때는 주말에도 학원에 나가 공부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했다.

막창을 우물거리면서 끄덕이긴 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도. 





그는 차근차근 커리어를 더하고 있다.

그의 성취를 볼 때, 나는 작아지고, 하루키 아저씨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가장이 이룬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야' 라고  하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현재의 나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또 다시 후회하지는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하루키 아저씨처럼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훌쩍 그리스로 떠날 용기도 없지만. 

무엇을 더 해야 나의 갈증이 채워지고, 두려움이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