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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by 와락 201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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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근교의 가상의 베드타운 도시, 알링턴파크에 살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 기혼여성

다섯 명의 하루를 섬세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도입부는 비 오는 알링턴파크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는데

솔직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몰입이 되지 않는 나를 탓하다 보니

어느덧 '줄리엣'의 삶에 완전 빠져들고 있었다.

 

다섯 명의 여인 중 유일한 워킹맘이기도 한 줄리엣은(파트타임 직장이 있는 메이지도 있긴 하나)

어릴 적부터 똑똑한 아이로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지만 결혼, 출산, 육아를 겪으며

평범한 보통의 여자가 된 자신에게 실망하며 끊임없이 자아분열 중이다.

자신의 삶에 주어진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하루 종일 직장과 관련된 생각을 하며 가족의 삶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고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함에 숨막혀 한다

 

유일하게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매월 금요일 오후 본인이 가르치는 문학반 아이들과의 

모임을 통해서이다아이들과 책을 선정하고, 다과를 먹으며 선정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책에서 보았던 연대와 따뜻한 결속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좋아하는 책들도 자신의 외로움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이 지점에서 정말 공감했는데, 어쩌면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모임을 끝내고 교실을 정리 한 후, 어둑해진 저녁 여러 상념들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 번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면서 어느덧 나는 알링턴파크 중심부로 끌려들어가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다.

(아마도 나는 크리스틴의 저녁식사에는 초대 받지 못했을 것 같다.)

 

런던에서 떠나 와 새로운 삶을 이루고자 했으나 곧 후회를 하고 있고 모든 것이 불만스러운 메이지.

무려 네 번째 아이를 임신하고 남은 방 하나를 외국인에게 세를 주다가

볼로냐에서 온 파올라를 만난 후 방치해 놓았던 여성성을 되찾은 솔리.

그 후 그녀는 작은 사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그녀만의 바디오일을 사게 된 것.

솔리는 다섯 명의 여인 중, 그래도 희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어 보기 좋았다.

더불어, 나의 사치는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시오노 나나미 작가님도 생각의 궤적이란 책에서 말한 낭비에 대해 솔리 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기도 했다.  

 

인생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감싸주는 자신을 위해 혼자서만 할 수 있는 낭비를 말하고 싶은 거다

쇼핑은, 특히 낭비를 할 경우네는 혼자 가서 혼자 골라야 한다. 제 손으로 고르고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산 물건을 받아 들고 집에 돌아가는 일련의 행동만으로도 사람은 때로 정말 행복해 진다

인생에는 어느 정도의 낭비가 필요하다

헛된 일도 해보지 않으면 유익한 일도 할 수 없어진다.”

 

 

자기가 원했던 곳으로 이사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멋진 주방을 갖고 있으며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공허해 보이는 완벽주의자 어맨다.

그리고, 불우한 시절을 극복하고 남편을 만나 알링턴파크에 정착한 본인의 삶을 '성공'이라 

생각하는 크리스틴.

 

 

알링턴파크에 살고 있고, 기혼여성, 육아에 지쳐 있다는 것,

현재의 삶에(크리스틴을 제외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녀들은 서로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섬들처럼 지낼 뿐이었다

사실 어디 그녀뿐이랴.

내 주위에도 섬처럼(나를 비롯하여) 떠다니는 그녀들이 많지 않을까

옮긴이의 말처럼 우리가 서로 연대 하지 못하는 것을 사회 구조의 이차적인 불평등으로 봐야 할지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확실한 것은 내 주변의 그녀들을 만나 담소를 나눌

서로를 알아갈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혼여성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

적어도 아이 둘 이상의 어머니가 된 여성들이 읽어야 섬세하고 꼼꼼하게 묘사한

그녀들의 하루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볼 수 있을 듯 하다.

 

 

 

 

밑줄 그은 구절

 

매달 마지막 금요일은 학교 문학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선물 같은 그 하루 동안 줄리엣은 

자신만의 은밀한 삶을 보충해야 했다. 그녀의 삶은 문학반 모임이 있는 금요일 오후라는 

가느다란 실핏줄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었다. P32

 

결국 그렇게 뜨거웠던 지난날도 모두 이렇게 될 것이었나 보다. 온통 물질적이기만 한 공간을 가로지르는 

은밀한 상념들. 줄리엣은 자신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자들은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거나 단조로운 회색빛 거리에서 유모차를 밀고, 일하러 간 남자들은 

전쟁에라도 나간 것처럼 절대 돌아오지 않는 생활. P35

 

 

어느 날 베네틱트를 만났고, 당황한 그녀 앞에 거대한 협곡처럼 험난한 도전이 닥쳤다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그녀 어머니의 삶이 조금 황폐해진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P54

 

얼마 동안 그녀는 가정과 남편과 아이들이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그런 것들이 평범하지 않은 일이고, 인간의 경험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나서는 그녀의 혈관 안에 

매일 조금씩 납덩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P55

 

줄리엣은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 했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없었던 걸까?

머리 자른 사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 깊이 없는 시선의 대상의 되는 것, 그 작은 분홍색 입에 자기가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했다. P205

 

엄마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 이 여자 아이를, 자신의 딸을 창조해 간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그 엄마들은 모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딸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 주고

젖을 먹여 키우고, 조금씩 조금씩 물감으로 색을 더해 주었다. P214

 

 

뭔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줄리엣이 말했다

그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될 때가 있단다

기다리는 동안 뭘 기다리는지도 정확히 모르지. 그냥 다음 단계를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결국 끝에 가서는 그 다음 단계라는 게 아예 없다는 걸 깨닫는 거지. 지금 있는 게 전부라는 걸.”

 

메이지의 얼굴은 겨울날의 정원처럼 살풍경하고, 황량하고, 단조로웠다

일단 그 얼굴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았다

얼굴은 그녀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처럼 침묵으로 대답했고,

이제 그녀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메이지는 화장을 좀처럼 빼먹지 않지만

그에 비례해 화장이 주는 효과도 줄어들고 있었다남자들이 자기의 아내와 함께 있는 어떤 여자 이상으로 

그녀를 봐 주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