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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금요일의 자유시간

by 와락 201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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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점심

팀에 혼자 남겨졌다.

 

 

누군가와 함께 점심 약속을 잡기도 애매한 시간

팀원이 많지도 않은 조직이라 멍하니 앉아있다가 깨달았다.

주말에 그토록 갈망하던 혼자만의 시간 아니던가.

 

 

아하하하하핫

가방을 둘러메고 회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북유럽 감성의 핫한 레스토랑에 씩씩하게 걸어와

리코타 치즈 샐러드를 시켜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아메리카노까지 한 잔 곁들이면 좋으련만

아침에 맛없는 드립커피를 먹었으므로 아쉽지만 패쓰.

골다공증이 두려워 커피도 반으로 줄였다.

 

 

 

밀가루 똥배를 읽고나서는 밀가루 섭식을 최소한으로 하는데

샐러드에 곁들여 나온 쫄깃하고 부드러운 빵의 식감을 모른체 한다는건

빵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혼자만의 시간 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에

치즈를 잔뜩 발라 올리브오일로 촉촉해진 베이비채소들을 얹어 한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어 넘기는 사이, 노라 존스의 노래가 에피톤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좋구나. 오호라. 금요일은 신나는구나.

 

 

치즈를 서로 더 발라먹겠다는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 문제, 부동산, 시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일정에 대한 이야기 외에

별다른 주제가 없어 무미건조해진 부부간의 대화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의견을 제안했을 때 깊이 공감해 주면서

좋은 아이디어라 디벨롭하자고 거들지 않아도 되는 점심 시간.

 

 

마침

조용하고 아늑했던 레스토랑이

아이 넷, 어른 넷 부대가 도착하자 소란스러워진다.

우리 애들은 이 시간에 할머니랑 나또에 밥을 먹고 있을텐데

나 혼자 호사스럽게 시간을 즐기는건가라는 자책감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고.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뛰고, 팽이를 던지고,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타이르지만 엄마들의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에 묻혀

이제, 배경음악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한결 커진다.

익숙한 단어가 귀에 꽂히는 걸 느낀 순간,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회사 사람들이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은밀한 점심시간이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든다.

 

 

 

아까 입 속으로 기세좋게 전진했던 글루텐 덩어리들이

일제히 위에서 소화액들과 전투 중인 듯 하다. 끄억. 연달아 트림이 나오고.

먹지 말 것을 그랬나 하는 후회와 동시에 점심 시간이 몇 분이나 남았는가 계산해 보고.

 

 

 

 

이렇게 2월의 첫째 주 금요일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이런 날 제주의 쨍한 하늘이 그립고,

1층 카페테리아에서 착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리의 깊고 풍미가 좋은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바다를 보면서 자판을 두들기던 기억들이 선명하다.

 

 

이제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들어가야지.뿅

 

 

 

 

허세스러운 점심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