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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상수보다 변수

by 와락 201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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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그 곳을 다녀 온 후로 부푼 꿈이 사라져 

휘청거리는 내 마음을 어찌 추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 


우리만의 집을 지으려고 했었다.

재개발 지역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구역해제된 그 곳.

사대문 안에 있는 땅이니 언젠간 쓸모가 있지 않겠냐며 

그저 두고만 보던 그 곳에 집을 지어볼까 하며 꽤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이 말하던 일본의 협소주택 사례도 찾아보고

전원속의 내 집 같은 잡지에 소개된 자료도 검색해 보며

내 머릿속에 우리 집을 조금씩 그려가고 있었다. 


채광, 통풍, 단열은 기본이고

주방은 아일랜드식이었으면, 

집이 넓지 않을 테니 화이트와 우드 톤으로 깔끔하게.

장독을 한 두개 놓을 만한 마당이 있었으면.

감나무나 대추나무를 심어서 아이들과 함께 커 갈 수 있도록 하고

제주에서처럼 텃밭에 상추와 방울 토마토를 심어 키웠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문득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살게 될 곳을 원하는 대로 구상할 수 있다니

침실의 인테리어와 거실 한 구석에 '나만의 독서 공간'까지 그려보며 

얼마나 기대를 했었는지. 



평일 휴가를 내어 아이들과 함께 그 곳을 방문했다.

언덕을 얕게 한 번 오를 때까지는 지금 사는 동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뭐 앞으로 적응을 해야겠지 라며 넘겼는데 두 번째 오를 때는 긴장이 되었다. 


남편의 추측으로는 바로 뒷집이 우리 땅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고 했는데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라. 

뒷집 아저씨는 남편이 측량 어쩌로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건축법에 의하면 

이미 살고 있는 곳은 어쩔 수 없다며, 마음대로 하라고 되려 화를 내고.

측량에 같이 입회할 수 없다며 심지어 집을 짓지 말라고 회유(?)하기 까지도.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었는데.

그 동안 로드뷰로만 보면서 우리가 간과한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하였다.

바로  옆 집에 꽂힌 깃발이었는데. 근처에 절이 있는 지 이러한 깃발 꽂힌 신당이 꽤 많았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우리로서는 난감한 문제였다.

아이들만 아니면. 뭐. 어쩌면 집짓기를 강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 아닌가.

이웃간에 오며 가며 지금의 윗층 아래층 보다는 가까운 관계가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는데. 


시경이가 다니게 될 학교가 거리가 먼 것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옆집과 뒷집의 기세등등 아저씨.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얼이 빠져 집으로 돌아왔다. 




세계여행에 이어 두 번째 곰스크였는데. 

생각하지 못한 변수 앞에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말내내 '나 지금 몹시 우울해'를 이마에 써 붙이고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앉아 있는데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나가보니 우리 가족 너나할것 없이 모두 두려워 하는 4층 할머니.

욕실 배관에 문제가 있었는지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당장 내려오라며  흰자위가 보이게  눈을 크게 굴리며 이야기 하시는데.

몸이 얼어 붙을 것만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남편은 아이들과 방안에 엄마는 나오지도 못하고 방문 앞에서 얼음.

배관 기사님을 불러봤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며 하루 종일 욕실을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어흑어흑어흑.




그래도 저녁에는 

남편의 배려로(탐탁치 않지만 오늘만이야 라는 얼굴이었음) 동네 사우나에 다녀왔다.

뽀언니의 급제안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아이스크림케잌도 받고.

내일 일어나 개구리이모가 준 선물에 함박 웃음을 지을 아이들을 떠올리니

뿌듯하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이 기분을 다시 올리기엔 부족하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남편이 스케치한 우리집

1층엔 주차공간과 방 2개. 여유가 있으면 아주 조그만 마당

2층엔 거실과 주방. 엄마가 원한 다용도실도 포함되어 있음.

3층엔 부부침실과 아이들 방. 드레스룸.

옥상은 단열 문제로 패쓰.


원래 계획은 연내 결정과 동시에 측량을 한 후 

남편의 학교 후배들에게 실제 설계/건축을 맡기고

2월에는 철거를 시작하려고 했었다. 

시봉이처럼 어깨를 한 번 으쓱 하는 것으로 정리되지 않지만

어쩔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