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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문을 닫는 마음으로

by 와락 201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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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를 젓다가

노를 놓쳤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고은, <순간의 꽃>




이제는 이름도 희미해진 잊혀진 팀의 유일한 멤버인 그 분이 퇴사한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퇴사를 지켜봤고 환송회에 참석해서 같이 울고 웃고 마지막을 함께 했는데

이번은 느낌이 다르다. 


당시 조직에서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를 본인이 있는 조직으로 인도하사

유머충만한 성령을 내리시어 깔깔거리며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끊임 없이 업무로 자극하여 성장할 수 있게 해주셨으며

황무지 같은 타팀으로 매정하게 보내기도 하여 애증의 관계를 맺게 해주신 그 분. 


그저 아이처럼 원망했던 날도 있었고

초창기 조직 멤버로서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으며 

명확하지 않은 업무지시라며 날세게 대들어서 혼도 났었다. 


습자지 같은 얼굴이라고 표정의 변화가 항상 나타난다고 포장이 필요하다 하셨고

나의 조급증을 지적하고, 빠른 실행도 좋지만 전략의 부재를 아쉽다 하시고 

출산휴가를 가는 나에게 거침없는 평가를 주셔서 뼈아픈 상처를 남겨주시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팀을 옮기는 날, 탁상 달력에 빨간 펜으로 나의 이동날짜에 표시된 동그라미. 

제천으로 워크샵을 갔을 때 함께 보았던 그 청풍명월 

수리수리 최박사 환송회를 후암동 뒷골목 고기집에서 하면서 선물은 우아하게 스왈로브스키 주던 기억. 

야근 하다 같이 퇴근하던 길 마포 오페트에서 함께 먹던 빵

주말에 가끔 만나 함께 아메리카노 마시던 애오개 스타벅스. 

조산 위기라 창문도 못열고 집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 

주말 오전에 불러내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사 주신 브런치 

시경이 낳고 다시 복귀하여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대표님의 칭찬을 받은 날 

비오듯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보고 뜨거워진 눈시울을 한 채 어깨를 두드려 주셨던 기억.

잊을 수가 없다. 정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그 분의 조직생활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말들이 오가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분명한 진실은 열정을 다했다는 것. 하얗게 태운 열정에 누군가는 데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마지막에 조인된 멤버인데

이제는 모두 나가고 정말 나만 남았다. 

아니 이제는 명백히 남겨진 것이다.


함께 했던 시간, 추억들을 소중하게 남기고 싶어

환송회를 내가 직접 기획하게 되었다. 

퇴사한 멤버들에게도 연락을 해서 날짜를 잡고 장소를 예약하고

취향저격이 어려운지라 어떤 카테고리를 원하시는지 사전문의를 통해 디퓨저로 사놓고 

환송회 참여 멤버들이 , 그건 진짜 오버라고 오글거린다 했지만

서프라이징으로 '기념패'도 준비해 놓았다. 아직 아무도 모름. 

정여사는 나보고 혼을 투여하는 환송회냐며, 놀랍다고 혀를 끌끌 차지만


문을 닫는 자세로 

지난 조직에서의 일들을 회고하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이제 그 분을 만나러 가면 된다. 


팀장님. (그 이후로 본부장, 유닛장이 되셨으나 저에겐 팀장님)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진부하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이따가 만나요. 



요즘 가장 핫하다는 조말론. 시그니처 향으로 준비함. 




마음을 다해 준비한 선물이다. 

그 분이 좋은 기억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