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병원 진료를 위해 반차를 냈다.
비오는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대학병원 주차장에 안전하게 주차한 후 심전도실에 들렀다 진료실까지 가는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경이가 한 없이 꾸물거린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추호도 못했기에
10번 넘게 화장실에 가자고 불러도 대답없는 주시경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부글부글.
세면대 앞에서도 온몸을 배배꼬면서 양치를 한사코 마다하는 아이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아, 경이는 준비하기까지 좀 오래 걸리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경에게 '엄마가 심장이 똑같은 박자로 뛰지 않아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늦으면 약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플 수가 있어서. 오늘은 좀 서둘러 준비해야 해.
아까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다시 한번 부탁할게. 좀 빨리 준비해 볼까'
정중한 요청이 통했는지
적극적인 협조로 9시 이전에 무사히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약간의 언쟁은 있었지만 곰돌이 젤리 하나로 대동단결 된 주자매는
기분 좋게 어린이집에 올라가고, 나는 오래간만에 창완아저씨 라디오를 들으며 병원으로.
2개월 만에 만나는 이동진기자님을 닮은 의사선생님은
뽀얀 얼굴로 맥박을 재면서 젠틀하게 잘 지냈냐 안부를 묻고 심전도 결과를 15초 정도 스캐닝 한 후
콩코르정 4개월치를 또 처방해줬다. 너무 오래 약을 먹는것 같아 걱정된다는 나의 말에
크게 문제되는 약은 아니라며(어지럽거나 불편하진 않으시죠? 라고 물으며..)
어튼 약 2분만에 진료는 끝나고 4개월치 처방전을 받고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집에 돌아와 엄마와 근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아포가토도 즉석에서 만들어 드렸으나, 아이스크림이 바닐라가 아니라 요거트여서 실패.
대신 커피포트에서 라떼를 뽑아드려 만회.
약 1시간의 여유가 있는데 이대로 회사 가기는 너무 아쉬워(물론 계속 나를 찾는 까톡이 울리지만)
집 근처 카페에 와서 차를 주문했다.
아마 전과 같았으면
나는 바로 회사로 출발하여 나를 찾는 사람들의 연락에 빠르게 응대하고
오늘 급하게 휴가를 낸 동료를 대신하여 마치 모두 나의 책임인 것처럼 처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콩코르정이란 녀석 때문인지 NVC 수업 이후의 학습 효과 덕분인지
누군가의 요청 혹은 자극에 응대, 반응하는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내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심한 회사원인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후 3시까지 주어지는 반차의 여유를
최대한 방해 받지 않고 누리는 것이지만...(지금도 계속 연락은 오고..)
어찌되었든 금요일이다.
내일은 주자매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주말'이고
비록 중고책이긴 하지만, 봉이가 기다리는 과학동화책이 도착할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신간 도서를 구경하며 나를 위해 책 한 권 정도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