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시봉이와 분당서울대병원에 다녀왔다.
뼈나이 검사를 6개월 단위로 하고 있는데, 작년 상반기에는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이대로만 커주면 문제 없겠다라고 했으나 하반기에는 별로 크지 못한터라
염려하지 말라고 말은 하면서도 성장호르몬 주사 이야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4개월 후에 다시 병원에 가서 성장호르몬 분비가 잘 되는지 검사를 해야 한다는 데
빙그레 웃으며 의자를 빙빙 돌리면서 장난을 치는 시봉을 보고 있노라니
그저 답답한 마음 뿐. 큰 걱정 말라고는 하시지만 그럼에도 익숙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회사에 조금 늦겠노라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과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길
주사를 맞을 줄 알고 공포에 질렸던 어린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즐거워 한다.
대체 내가 지금 회사 매출을 걱정할 시기인가. 내 딸 아이의 성장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집에 일찍 데려가 운동도 시키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먹이고 잠도 10시 전에 푹 재워야 할텐데-
다행히 경이는 쑥쑥 자라주고 있다.
때때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지만 어린이집 졸업을 한달 여 앞둔 요즘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어린이집에도 가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니까. 작년 여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니.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공손하게 존댓말을 하며 조숙하게 이야길 하다가도
동생의 자극에 소리를 지르며 씩씩 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아이가 아직 '아이'임을 조금 더 경이에게 '시간'이 필요할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일러둔다.
이런 나를 보고 동생이 언니가 좀 '변한 것 같다'라는 피드백을 주었는데
재작년 경이의 아침 투정을 받아주다 등원 차량을 놓치고서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아이들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쳤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 후후.
매일 잠언을 한 구절씩 쓰고 수와셈을 2페이지 정도
영어 파닉스 교재 복습 혹은 영어책 엄마와 낭독하기(한 번 정도 녹음도 하고)
주말에는 기억나는 일을 소재로 일기도 쓰고.
차근 차근 주어진 일을 계획대로 해 나가는 경이를 보면 믿음직스럽고 고맙다.
시봉은 지구과학 관련 책에 큰 흥미를 보이는데, 요즘에는 와이 시리즈에 푹 빠져서 매일같이 읽곤 한다.
얼마 전에는 제인 구달 책을 읽고서는 나한테 '곰베숲'을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지금은 '북극'관련 이야기와 수학동화만 반복해서 읽는 중이다.
경이는 창작동화나 전래동화를 선호하고 봉이는 자연관찰책을 즐겨본다.
본인의 취향이 있다는 것. 두 아이에게 동일하게 책을 읽어줬음에도 각자의 취향대로 책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
제주에서 전투적으로 주자매에게 목이 쉬어라 읽어주었던 날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자화자찬 하고.
독서를 '과제' 처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심할 때 마다 책꽂이에서 골라와 그저 책장을 넘기며 이야기 속으로 빠지는 것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 느끼는 '재미'를 아이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 대견하고 기쁘다.
연휴 동안 아이들과 충실하게 시간을 보냈다.
주자매는 놀아도 놀아도 더, 더를 외치곤 하지만.
시댁에서 1박 한 후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이집트 보물전도 관람하고
아빠가 만들어 준 눈썰매도 타고, 시장 놀이, 숨박꼭질, 주자매 계획 세우기 등등.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사랑만큼은 풍성히 받고 있는 주자매는 유년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태백산맥을 읽으며 현대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가도 주자매의 부름에 언제든지 응답한 아빠와
동물농장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반란을 일으키는 동물들을 따라가다 '엄마' 한 마디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듯 책갈피를 꽂아 둔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경선생의 일기
모든 게 노래, 인생의 모토를 실현하고 있는 봉의 일기.
이집트 보물전에서
설 연휴라도 남사당놀이도 한창, 아이들과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즐겁게 관람.
남편이 그린 눈사람.
장판으로 만든 홈메이드 눈썰매를 타고
눈이 펑펑 쏟아지길래, 집에 남은 와인 반 잔을 따라 낮술.
홍상수 영화처럼 인적 드문 동네 중국집에서 고량주와 탕수육을 먹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