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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by 와락 2016. 7. 27.

경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은 올해 초 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고 사실 이 정도 시설의 원을 찾기도 힘든 터라 

아이 혼자 극복할 수 있을거야 라는 믿음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시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와의 잦은 삐그덕거림이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그 친구들을 따르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시경이 스스로 위축되면서 친구들의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고가 반복되고 있었다. 

단짝이라는 개념이 생기는 시기라서 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다고 선생님은 이야기 하시지만

우리 아이가 엉엉 울면서 속상함을 토로할 때면 정말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의 행동도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받은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지고 아픈데 

이 모든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풀고 있는 것 같아서..

동생의 지인 통해 그림테스트를 받아 보았다. 

 

 

경이의 그림에서  가족들은 서로 다른 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거실에 홀로 있고, 아빠는 희미하게 그려져 있지만 잠을 자고 있고,

할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신다.

자주 싸우지만 경이가 가장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동생이고

아빠는 잠을 자고 혼내는 사람,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지만 기다리는걸 참기 힘들어하는 사람 

엄마는 결혼식에서 입을 법한 드레스를 입고 애기(경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 이야기 했다. 

 

 

아이와 주말 내내 같이 지내고, 맞벌이 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 둘 다 최선을 다해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것일 뿐...

 

 

육아서를 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밑줄을 그었지만

이론과 실전은 달랐던 것인가. 

 

 

답답한 마음에 동료 분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유치원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본인은 금요일 저녁이면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열어 

아이 친구를 초대하고 다음 날 브런치까지 먹여서 각자의 집에 보내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그 친구집에 오는 걸 좋아하는지(더불어 그 친구들의 엄마까지)

반 친구들이 이 아이 집에 초대받고 싶어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게다가 가끔은 반차를 내고 아이 친구들 몽땅 데리고 체험학습을 간다던지.

그런 노력으로 인해 직장맘임에도 엄마들이 중요한 정보는 계속 공유해 주고 있다며...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가 있으며, 나는 딸 아이의 생활을 위해 무얼 얼마나 했는가 싶어 

하소연 하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

경이가 여러 차례 친구들과 주말에 키즈카페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으나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어 미루었던 일, 

돌아보니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서도 별다른 모임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만나는 친구들이 없고..

'매일 심심해'를 입에 달고 있는데, 그럴 때 마다 '뭐가 심심하니, 책 보거나 그림 그리면 되지' 라고 했던 것들..

유일하게 만나던 친척마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몇 주간 주말마다 주자매끼리만 놀았던 일들. 

 

 

 

 

 

 

 

경이가 참 외롭겠다. 

회사에서도 마음 안 맞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껄끄러운데

나도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혼자 해결하라고 했으나 참으로 모질게도 대했구나.

엄마는 빨리 일하러 가야 한다고, 오늘도 지각이라고, 동생에게 너무 못되게 말하는 것 같다고.

 

 

아이는 오래 전부터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고, 실상  그 신호를 두 해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는데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심정으로, 괜찮아질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덮어 두었다.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서 다행이다.

 

 

 

 

 

경아.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2013년도 사진

제주에서 이 악물고 버티며 지냈던 시간.

귀엽던 이 아이들에게 내 몸 하나 힘들다고 짜증냈던 일들이 생각나면서 미안해졌다.

아이가 참 예뻤는데, 그때는 잘 몰랐었다. 

남편은 멀리 있고, 하지만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남편에게 더 무언가를 바랄 수도 없고

독박육아는 그저 버겁고 힘들고 외로웠던.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웃으며 그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