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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미국에 다녀왔습니다(4) 17.08.14-08.26

by 와락 2017. 9. 1.


토요일 오전 LA 공항에 가야 했기 때문에

여행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은 쇼핑과 수영으로 마무리 하기로 했다. 

저녁은 비치에서 선셋을 보며 버거를 먹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안개인지 구름인지 잔뜩 올라와 

타는 듯한 노을은 보지 못했다. 



조카들은 목요일부터 개학을 해서 이른 시간 시누는 도시락 준비에 바빴는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학생들에게 학교는 가기 싫은 곳 같다. 

3개월 간의 길고 긴 방학이 끝나는게 아쉬웠는지 학교 가기 싫어를 연발하는 조카 옆에서

경선생도 자기 역시  학교 가기 싫다고 따라 말하고, 시봉이는 한술 더 떠 한국 가기 싫다고. 



그랜드캐년과 라스베가스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우셨던지

내년에 큰 조카와 함께 다른 곳에 가시겠다고 다짐을 하셨다. 카지노에서 여러 게임도 해 보고 좀 둘러보길 원하셨던 듯 한데 

같이 방을 쓴 스무살 대학생이 밤만 되면 홀연히 사라져서 제대로 즐기시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그랜드캐년은 꼭 가보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시기도.




오전에는 유기농 식품 매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 

시아버지는 선물을 뭘 사냐. 그냥 빈 손으로 갈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정작 매장에서는 각종 견과류와 육포등으로 카트를 하나 꽉 채우셨다. 

좀 천천히 둘러보며 남편이 말려도 와인도 한 병, 내 화장품도 여러 개 담으리라는 계획은 

아버님의 수북히 쌓인 견과류 카트 앞에서 무너졌다. 

더 없어? 지금 살 거면 빨리 골라 라고 시누도 남편도 여러 차례 물어보았지만.

말린 바나나와 아몬드, 육포,초콜릿 등으로 쌓인 카트가 300달러 이상이 찍히는 것을 보고 포기.

옆에서 주자매가 초콜릿에 홀려 이것도 저것도 하며 사달라고 하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하고. 





시누이는 못내 아쉬우셨는지 계속 선물을 사주려 하셨다. 

그래서 두 번째 간 곳은 농구 선수들이 주로 입는 스포츠웨어가 있는 아울렛 같은 매장. 

남편은 드디어 치수에 맞는 셔츠를 골랐다. 주자매는 물놀이용 장난감을 받고(디즈니에서 모아나 목걸이를 못사서 아쉬워 했는데 이것으로 대체 완료) 나는 언니가 직접 골라주신 과일 담아 놓는 그릇을 받았고, 주자매의 영어책을 몇 권 골랐다. 

할인매장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득템 아이템이 숨어 있었다. 

식기류 코너에서는 내가 관심이 없어 그렇지 로얄 어쩌고 브랜드도 있고.

좋은 제품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가진 '한국 아줌마'들이 잘 사간다고 들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집 앞의 수영장에 갔다. 2주 동안 하루 정도 빼고는 매일 갔었다.  

남편은 수영과 낮잠을 즐기며 아이들을 케어하고 나는 그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데이타로밍을 하지 않아 불편함은 있었지만 덕분에 제대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낸 듯 하다. 


.  

아이들이 첨벙이며 까르르 웃는 소리, 백인 노부부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하이'하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그 옆에서 베드에 누워 타올을 두르고 낮잠을 즐기는 남편. 바람이 살랑거리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잔디밭에는 개들이 주인과 함께 뛰어 놀고 놀이터에는 엄마들이 삼삼 오오 모여 아이들 그네를 밀어주면서 

이야길 나누는데 영어라 귀에 잘 안들리므로 그냥 자막 없는 영화를 보는 듯. 



꼭 기억해 두어야지. 

금요일 오후 느슨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 본 것. 지켜 보았다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 같다.

그냥 나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는지도. 





마지막 날 아침에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었다.

남편은 어머님 돌아가신 이후로 다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 계획 대로 되는 것이냐. 결국 주님 뜻대로 되는 것)

내가 불안과 걱정을 껴 앉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질색 하는데 

아이들 학업과 장래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엄청난 교육비 지출을 감당할 수 없고 

기러기부부랄지 혹은 그 비슷한 것일지라도 그렇게는 살지 말자고 서로에게 당부했다. 




다만, 아침마다 운동장과 공원 주변을 힘차게 뛰거나 코치에게 축구를 배우고 있는 캘리포니아 소녀들을

본 남편은 주자매가 운동만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 했다. 

(집에 돌아와 시봉이의 소원대로 태권도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눈 먼 생쥐와 코끼리의 우화가 떠오른다.

나는 코끼리의 어느 부위를 만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었나. 

다리 정도는 만지기라도 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남김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생리가 시작하여 패닉상태에 빠졌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게 들리지도 않고 말그대로 멘붕. 

남편이 혹시 모르니 꼭 남겨놓아야 한다는 50달러를 가지고 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드럭스토어를 찾아 황급히 뛰며

점프하듯이 현실로 돌아왔다. 무사히 집에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 









금요일 오후 4시 풍경 




마지막 날의 햄버거. 베지버거라고 안에 있는 패티가 고기가 아니다.

녹두전을 호밀빵에 끼워 먹는 느낌?? 인앤아웃보다는 이 햄버거가 더 맛있었던 듯.


라임이랑 같이 먹는 맥주. 내가 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으니. 

답답한 듯 혀를 차며


이렇게 찍어주었다. 

얄밉지만 인정 할 수 밖에 없군. 끄응.




이것도 남편이 찍은 사진. 잘했네 잘했어.



여름 방학 숙제를 미루고 미루더니 여행 마지막 날 

언니 책상에 앉아 다급하게 해치우는 너란 아이는 정녕 내 딸이구나.

후후 엄마도 늘 그랬었지(추억에 잠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