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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얼음, 땡!

by 와락 2018.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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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가 감기에 걸렸다.

10년이 넘은 세탁기가 동결 된 것은 올해 들어 두번째이다. 

우리집에서 가장 열일하는 세탁기와 건조기. 

그 친구들이 없으면 일상이 진행되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세탁기 친구가 두 번이나 큰 감기에 걸린 것이다. 

2주 전 한파가 닥쳤을 때는 동결은 겪어보지 않았던 일이라 

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는 호들갑을 떨며 모터가 이상한 것 같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 하여

토요일 저녁 긴급출동 서비스까지 받았는데 결론은 안내직원 말대로 추위에 배수필터쪽이 얼어 붙은 것이었다. 

무안한 우리는(주로 내가) 얼굴을 붉힌채 허리를 굽히며 소리가 좀 이상했거든요. 라는 시답잖은 변명을 했다.

토요일 저녁 시간 까지 모터를 들고 꽝꽝 얼은 세탁기를 해동하러 다니는 기사님의 퉁퉁 부은 손을 보니 미안하고. 


한파 예보 전날 부터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정확히 6번(아이들이 그만 듣고 싶다고 횟수를 세기도)

동파 예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헌 옷으로 배수관도 싸놓고 필터쪽 물도 빼내서 밤새 얼어 붙는 것을 방지한다고 했는데

또 다시 낯익은 장애코드가 띠리링 소리를 내며 알린다. 


뜨거운 물을 여러 번 세탁기에 부었는데 제대로 얼어 붙었는지 계속 장애코드만 나온다. 

내일이 더 추울거란 기사를 보니 녹여봤자 또 얼겠구나 싶어 '내일의 일'로 과감히 넘겼는데

오늘 아침 세탁실 문을 여니 어제 꺼내 놓은 물에 젖은 빨래들이 동태처럼 다 얼어 붙어 있다. 

점퍼를 입고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세탁기 해동)을 하려던 의지도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려 

세탁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 빨래감이 덜 나온다는 것.






세탁기, 건조기와 더불어 세번째로 애정하는 나의 도서관 카트도 요즘 상태가 부실하다. 

주가이버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긴 했으나 행색이 말이 아니다. 

지난 주말 도서관에서 빌린 한글책이 좀 무거웠는지 부설주차장의 내리막길에서부터 아슬아슬했는데

마지막 입구쪽에서 빌려온 책들을 토해내듯 쏟아내며 부서지고 말았다. 

길바닥에 흐트러진 책들을 주워 담으며 부서진 카트를 어깨에 매고 주차장 기둥쪽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일주일에 많게는 5번 정도 카트를 트렁크에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나의 허리는 괜찮은건가.

바닥에서 책을 줍느라 갈라진 나의 손을 보며 한 참 서 있다가 집에 돌아왔다. 

책을 한 번에 많이 넣지 말라고 말하던 남편이 나의 표정을 보더니 안되겠던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장비를 들고 나가 뚝딱거렸다.

책을 넣어도 부서지진 않을거야. 이래도 부서지면 새로 사고.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공작이 들어간 미술시간이 수학 다음으로 가장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실과 시간이었나. 조립만 하면 되는 국기함이었는데 반에서 나를 포함해서 한 두명 정도

국기함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중학교때는 가사 시간에 만든 버선.

자기 발에 맞게 그려서 신을 수도 있어야 하는데 엄지발가락만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블라우스도 마찬가지. 그나마 요리 할 때는 좀 나았지만 맛은 없었다. 

이런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나는 남편이 무언가를 고치거나 만들면 방청객 수준의 물개박수를 친다.

남편이 어깨로 바람을 가르며 집안을 다니는 것이 눈에 보여도 졌다 졌어. 깨끗이 졌어의 마음으로('끝난 사람'의 다시로처럼)






주가이버의 도움으로 살아낸 카트를 끌고 

매서운 강추위에도 시봉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반납도 하고 다시 대출도 해왔다. 

또 부서질까봐 테이블 위에 빌릴 책들을 쌓아두고 그 옆에 카트님을 조용히 쉬게 한 다음

대여할 책들의 바코드 작업이 끝난 후에야 차곡차곡 넣었다. (휴우-)  

음원CD가 부록으로 딸린 책들은 별도의 쇼핑백에 넣어서 가져오기도 하고.

차 트렁크에 옮겨 놓을 때에도 신중을 기했는데 이런 정성을 내 허리에도 써야 하지 않을까 약 1초 정도 생각했었다. 




 



방금 안내 방송이 또 나왔다.

저층에서 배수관 역류 현상이 발생되어 세탁을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라며.

어차피 얼음이 되어 버린 세탁기를 작동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잠시 안도했다.

갑자기 서버 장애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커피나 먹어야겠군 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카페테리아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 참 어쩌지. 빨래를 하루 쉬어야 겠네.





이보다 더 큰 사이즈의 카트도 있는데 나한테는 이 사이즈가 가장 좋다.

한글책은 꽉 채워 50여권 정도 담을 수 있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무거워 휘어지고 깨지고...


재활용품에서 건진 듯 한데 아직까지 견딜만 하다. 

어튼 이렇게라도 고쳐줘서 고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