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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먼 북소리가 들리면

by 와락 2018.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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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살이란 분수령을 넘음으로써, 다시 말해서 한 단계 더 나이를 먹음으로써, 

그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얻는 대신에 그때까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앞으로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 먼 북소리 







 양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지냈던 6월이 지나고 드디어 7월이다. 

아 이제  여름이구나. 달력을 보니 4주 후면 주자매 여름방학. 이런.

6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신학대학교에서 하는 여름성경학교 수업을 8시간 들으며 수액 투혼을 불태웠다.

내 생전 장로회신학대학교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 불평을 하면서도 끝까지 수업을 들었고 심지어 찬양 율동도 쉬지 않고 열심히 따라했다. 


그 전날인 금요일에는 남편 회사에서 당첨된 호텔 시숙 사용권을 당당히 내가 쓰겠다고 말하고

호기롭게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외박을 권했다. 




 새로 오픈 예정인 호텔에 들어서니 아직 준비가 덜 끝나서 냄새도 나고 

20대로 보이는 앳된 직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몹시 분주하게 로비를 다니고 있었다.  

경기도민으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로 먼저 출발한다던 정지는 이미 도착해서 여유롭게 친구들을 기다리고.

나는 구역모임예배(이것도 안 갈려고 했다가 구역장님 연락받고 야자 도망가다 학주한테 걸린 학생처럼 참석)와

주자매 픽업까지 마무리 하고 출발. 

오양은 우리 셋 중 유일한 직장인이므로 회사를 마치고 늦게 도착했다. 





 간만의 저녁 외출로 자유부인 된 정지는 자유함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친구들 오기 전 미리 둘러본 호텔 근처의 상가로 우리를 이끌었다. 

저녁 메뉴 선정에 고심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물에 빠진 닭과 날생선을 좋아하지 않는 오양의 입맛을 고려하고 

여름 밤, 야외 테이블, 적당한 안주와 시원한 맥주를 마실만한 장소를 신중히 선택했다.

미세먼지 나쁨으로 야외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분위기과 멋을 중시하는 정지 앞에 미세먼지 따위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친구들을 따라가 자리에 앉았다. 





이자카야의 야외테이블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배경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각자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 하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지난 십여 년간 들어왔던 오양 지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며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에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오늘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날들.

 



반갑게 마주앉아 이야기 하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오양의 시련 시기가 끝이 나고 다시 잠잠한 삶의 궤도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그녀를 둘러싼 삶의 점마다 거짓말 같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마치 '시련 시즌2가 시작되었다'라고 오양의 맥주 잔 위로 자막이 흐르는 듯 했다. 

헉 소리 외에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기 어려웠고 그저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자기 삶에 대해 글을 쓰면 300페이지 내외의 책 한 권 정도는 쓸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양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한 권을 마무리 한 후  다음 편을 준비하는 듯하다.

어쩌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는 나의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금과 같이 분기별로 만난다면 앞으로 25년 동안 총 100회 정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한 번을 봤으니 이제 99회 남았다. 

우리는 계속 건강하게 만나며 드라마를 보듯 일시중지했다 재생버튼을 누르며 

어제 만난것 처럼 이야기를 이어갈 테지만.

99회가 지난 후의 만남을 인생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신이 난다. 

100회 만남이 종료되었습니다만

환갑이 넘었는데 싸우지도 않고 정답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헤어졌군요. 

당신들의 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보너스 20회 추가 지급.  

이런 생각을 하니 시뻘건 볶음 우동을 맵다고 하면서 종이컵에 화이트와인을 따라 마시는 

우리 친구들이 참으로 소중했다. 







마흔이 된 정지와 

곧 마흔이 될 오양과 

그 다음 해에 어김없이 마흔이 될 나까지.



우리가 하루키는 아니지만

마흔 살의 분수령을 넘는 어느 날 아침 아득히 먼 곳에서 울려퍼지는

북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소리가 우리를 어떻게 이끌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