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가지라도 자신만의 지적인 미덕을 탐색하는 과정이 곧 논문을 쓰는 과정이며,
그것은 논문이라는 결과물보다 훨씬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김 기란 / <논문의 힘>
이 선생, 가설에 좀 문제가 있는 듯 하네.
논문 예비심사 일주일 전,
잿빛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자켓 안주머니에서 만년필 처럼 생긴 연필을 꺼내서
보고서에 이런 저런 피드백을 직접 써주시기도 하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멀어져가기만 했다.
하얗게 질려가는 내 얼굴을 보시고는 '자네 알겠나' 라고 물으시더니
자리를 옮겨 화이트 보드에 쓰시기도.
4월부터 시작 된 교수님과의 만남, 가설을 정하기 전에도, 방법론을 논하기 전에도,
척도를 정하고 설문을 돌리기 전에도 뵈었고 여쭸었는데...
인자한 표정을 지으시며 클래식 라디오의 DJ같은 목소리로
종속변인 2개를 바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해 보지.
한 달 가까이 책과 유튜브 통계 동영상을 보면서 SPSS에 매달렸지만
선행연구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 뿐만 아니라 가설과도 맞아 떨어지는 결과를 얻기 어려웠다.
매 학기 무수히 쏟아지는 논문들 중의 하나일테지만 나에겐 졸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결과물인데
예상과 다른 숫자 앞에 아득했다.
논문을 꼭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졸업 시험을 보면 무난하게 졸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꼭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논문을 쓰고 졸업한 동기가 대단해 보여 부럽기도 했고
결혼 초기였나, 남편이 '당신이 논문을 안 써봐서 그래' 라고 했던 말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석사 논문이지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고 싶었다.
수능시험 후 논술도 준비도 하지 않았던, 여타의 기회도 뿌리쳤던 나에게
공식적으로 다시 만회해 볼 수 있는 기회.
실체없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지적허영을 채워볼 수도 있으리란 기대도 하면서-
다이아몬드만 영원한 것은 아니다.
후회의 아이콘 역시 변하지 않는다.
위의 이유와 기대만으로 논문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매일 마주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무한도전 보다 무모한 도전의 애청자였으므로.
매일 후회를 하고, 다시 또 도전하고, 후회와 도전의 추에 올라타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설문도 통계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르지만
비용의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내가 다 하고 싶다는,
혹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화근이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주방테이블에 앉아 SPSS 를 열고 데이터를 한 땀 한 땀 넣고 돌리다
이 방법 저 방법 사용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모한 도전의 차승원을 떠올렸다.
연탄을 옮겨쌓다 결국 성공을 못하고 깨진 연탄 앞에 망연자실 하던 모습
대체 이걸 왜 하는거야 라고 물으면 깔깔깔 경박하게 웃던 멤버들과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마지막에는 자양강장제를 나눠먹던 차승원.
진행이 더디고 힘들던 날,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데
마가복음 5장 36절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셨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경건하게 한글 파일을 열고.
그러나 그 다음 주에는 '뿌린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씀을 전하셔서
아 네. 하나님 잘 알겠습니다. 라고 허리를 곧추세울 수 밖에 없었다.
벽돌을 쌓듯 한 단어씩,
접속사도 넣고 마침표를 찍어 문장도 만들고 그렇게 단락을 완성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감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능력을 끌어내는 듯 싶다.
10월의 마지막 날, 교수님이 논문 초안을 보시고는
또 그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며 제목 수정 및 결과분석을 일부 다시 하라고 하셨는데
(마감 하루 전날이라 영혼이 털려 나가는 듯 싶었지만)
알겠습니다. 라고 씩씩하게 대답한 후 집에 돌아와
주자매를 데리고 동네 할로윈 행사 가서 사탕도 받아 오고 침대에 눕히고 나서
주방 테이블에 앉아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쉬지 않고 마무리를 했다.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예비 제출일 뿐이고, 본심사는 남아 있으며 인준 받기 까지
여러 차례 오류도 수정하고, 인용의 문제는 없을지 꼼꼼히 체크해야 할 테지만
산은 한 번 넘은 기분이다.
'무능한 나를, 찌질한 나를 다시 만나셔서 손을 잡으세요' 라고
소리치는 김미경 원장님의 영상을 보면서 끄덕거리긴 해도
무능하고 찌질한 나를 자꾸 불러 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나의 체력.
육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힘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은 데이타들을 접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도 회사에서 하던 일이었는데
나는 그저 따라 베끼고 요약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구조화 하며 성찰하는 메타인지적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묻어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공부체력이 낱낱히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고, 무능을 직시하는 것,
나 이런 사람 아닌데 하고 항변하고 싶은 기분.
그 모든 것을 계속 롤러코스터 타듯 느끼고 경험하며 11월을 맞았다.
돌아보면, 내가 조직에서 접하던 상사나 선배들과의 대화는 주로 답이 정해져 있었던 듯 싶다.
평등의 문화가 배경에 깔려있어도 그 안에서 큰 가이드와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답(목표)를 양해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실행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하지만, 학교에서의 대화는 전혀 달랐다.
질문을 하면 교수님은 잠시 멈칫하시며
'이선생, 이건 자네 연구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생각과 주장을 오롯이 펼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결국 나는 처음부터 붙잡혔던 주제로 답을 찾고자 노력을 했지만 생각했던 대로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중하지 못한 선택과 훈련 부족,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는 낙관으로
예상과는 다른 결과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즉, 내가 문제를 대할 때의 어떤 프로세스라고 해야 할까.
좀 깊이 들어가면 내 인생을 관통하기도 하는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들도 신중하지 못하고 한 발짝 나아가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모하리만큼 낙관하며 상황에 닥쳤을 때는 후회와 불평으로 무장한 채
꾸역 꾸역 버티거나 해결했으므로.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결론의 지점, 다시 말해 해석의 지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찾아야 한다.
논문에서 기술한 대로 의의와 시사점,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나 어렵고 힘들지는 몰랐다.
다들 잘 쓰는 것 같았고, 논문을 읽어도 결과도 매끄러웠을 뿐 아니라
그 과정 역시 괜찮은 듯 싶었다. 어쩌면 남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대로 보았는지도 모르지만.
오류가 많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마감에 맞춰 제출한 내가 기특하다.
예전의 나라면 실체 없는 완벽주위에 시달려 포기를 했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나의 주제와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안 듯 싶지만.
교수님의 피드백도 나의 역량으로는 힘들긴 하나(앞으로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씩씩하게 알겠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외에는 다른 말씀은 드리지 않았다.
사실이기도 하고 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도 하므로.
말에는 정말 주술적인 힘이 있는지, 그렇게 내뱉고 나면 정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끝이 나지 않았지만
몇 차례 밤을 꼬박 세웠더니 다 끝난 듯 싶다.
그래도 일 주일의 여유는 생겼다.
아마 그 이후로는 말의 힘을 믿고
애써 웃으며 수정의 밤을 보내야 할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