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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함께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이

by 와락 2018. 11. 13.


시봉이는 주 2회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집 근처에 있는 곳과는 다르게 엄마가 직접 데려다 주고, 

수영복 갈아 입고 씻는 것도 도와줘야 하는 시스템이라 수영장 가는 날은 마음이 분주하다. 

경선생 줄넘기 학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와 간식 먹고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시봉이를

일으켜 다급히 수영장에 갔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시봉이의 페이보릿 어피치 수건, 갈아 입을 속옷, 드라이기, 수영 끝나고 먹을 간식인 치즈까지 다 챙겨 와 놓고서는

가장 중요한 '수영복'을 놓고 온 것. 


"엄마 다시 집에 갔다 올테니, 잠깐 기다려줄래?"

"아니. 괜찮아. 오늘은 하루 쉬지 머(어깨를 으쓱하며)

하하 참(이마를 치고서는) 내 살다 살다 이런 일이(고개를 저으며)"



다음 주면 태어난지 만 칠년이 되는 시봉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어이는 없지만 명백히 나의 실수이므로. 


"엄마 내 치즈 어딨어?"

"수영장 나오기 전에 줬는데 신발 신을 때 옆에 놓고 온 거 아니야?"


후다닥 뛰어가서  치즈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오는 시봉이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여행가면 안되겠다. 그치?"

"그러게. 나 참. 이런 건 엄마  닮았다니까." 

"야..."




언제나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시봉이는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지 장난감보드에 '인생의 고달픔'을 크게 써 놓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물어보니(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잘 이야기 하지 않으려 하는터라)

친하게 지내던 반 여자친구가 자기 키가 너무 작다고 놀리고 놀이에도 끼워주지 않았다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귤껍질을 까서 귤을 입에 가득 넣고 즙이 줄줄 새어나와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참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더니 마음이 풀렸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수영장 가는 차 안에서 자작곡을 녹음하겠냐는 나의 제안에  

하나둘셋 목청을 가다듬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껐다 여러 차례 후에서야 녹음 시작. 




아무리 주변 환경이 나빴다고 해~도

마음 만큼은 괜찮을거야. 마음 만큼은 건강할 거야. 아아아

친구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오오오


미래는 충분히 바꿀 수 있어. 과거는 못바꿔도 미래는 바꿀 수 있어. 

내가 잘 하면 돼, 친구한테 말 해봐. 

친구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니가 잘 하면 되는거야. 아아.



어쩌면 이렇게 슬픔도 좌절도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걸까.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향해 노래하는 시봉어린이.

과거는 못바꿔도 미래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니. 








시봉의 짝사랑은 아직도 진행중인가 보다. 

지난 번, 솔이와 짝꿍이 된 베프에게 다가가 '넌 정말 행운을 얻은 거야'라며 속삭였다고.

베프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그날 아이의 비밀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시봉이가 와서 '넌 행운을 얻은 거야'라고 말했다. 대체 솔이가 네잎클로버라도 된 단 말인가. 






 

곧 만 일곱살이 되는 시봉.

인생의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에서 설레임, 기대, 희망, 기쁨, 신남,  

불안, 좌절, 실망, 지루함 등을 다채롭게 느끼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어른이 되는 것일텐데

지루함과 실망, 좌절의 모래 속에서도 설레임과 기대의 진주를 찾아내는 시봉이를 보니 안심이 된다.



만 일곱살도 이렇게나 힘든 인생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