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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결혼 14주년

by 와락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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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우리가 항상 상대방이 무엇을 해 주길 원한다는 점이다. 결혼은 우리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한다.

일단 결혼을 하면 불행하거나 외롭거나 기본적인 존재의 위기를 겪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다(필연적인 결과지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당연히(당연히!) 배우자 탓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기대하면 어떤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불가능한 기대감을 싹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빌 게이츠를 섞어놓은 사람을 상상하는 대신 내 곁에 있는 남편의 진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문 앞에서 진흙 묻은 부츠를 벗고 들어 올 줄 아는 남편 아닌가

-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호텔에 가서 1박 하고 여유롭게 조식을 먹은 후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아쉬워하며(동시에 주자매를 보고 싶어 하며) 집에 돌아왔다.

기억을 기록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11주년부터는 따로 기록해 두지 않았더니

작년인지 재작년의 일인지 자꾸 헷갈려서(밀레니엄 힐튼은 19년도이냐 20년도이냐 남편과 아웅다웅하고)

블로그에 남겨두려고 한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양재역 근처 힐튼가든인 스위트룸

저녁은 예전에 가던 한식당에서 먹기로 했는데 주말이라 문을 닫아

주변을 돌아보다 일식당으로 향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더 실감이 날 때는

나도 모르게 '예전' 이야기를 계속하게 될 때이다.

수서역이 회사였던 남편이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그 소중한 점심시간에 양재역까지 와서

짧게 점심식사를 같이 먹고(주로 갈비탕 이었던 기억) 각자 일터로 돌아가던 그 옛날

'아 그땐 정말 사랑했군요!'

과거형으로 이야기 하게 된다는 게 함정이랄까.

그랬지. 지금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일을

과거의 나와 남편은 아주 즐겁게, 신나게 했었다.

어디 그것 뿐일까. 밤 11시에 통화도 했었고(세상에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군요(어깨를 으쓱해 본다)

얼마 전, 회사 일에 지치고 답답해 스마트폰으로 농구를 보던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아 그만!'이라고 하며 내 입을 손으로 막았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회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나에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회사는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다녀주기를 바라는 남편이다(이건 걱정말라고 여러 번 이야기 해줬더니 안심 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07년도에 식당에 미리 가서 주문을 하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의 나는 그로부터 15-6년이 흐른 후

생글거리며 웃던 그 남자가 그만 말하라고 말하던 입을 손으로 막는 일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역시 다르므로

모든 것을 기대하면 어떤 것에도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제니스 작가의 말 처럼

불가능한 기대감을 버리려 노력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기념일 14주년을 맞이한 남편의 장점 3가지만 기록해 보기로 한다.

1. 청결 : 집에 오자마자 바로 씻는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내가 먼저 씻으라 잔소리 한 적이 없다.

2. 유머 : 남편의 유머는 맥락을 이해해야 웃을 수 있는데, 가끔 약오르게 하는 면도 있지만 대체로 웃기다.

3. 자기관리 : 꾸준히 운동도 하고 스스로를 잘 챙긴다.

무슨 일이든 두뇌를 자주 쓰면 그 쪽으로 두뇌가 능통해 진다고 한다.

14주년을 맞이해 의식적으로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볼 예정인데 마음 먹은지 3일 정도 흘렀다.

일년 후 15주년을 맞이해 기록을 남길 때 올해에 비해 달라진 부분이 있을지 궁금하다.

1년 간 잘해 보기를 나에게 바란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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