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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결혼 10주년

by 와락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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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리나 / 레프 톨스토이 (민음사, 연진희 번역)




나는 어떤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나. 

신혼초기에는 세계여행이라는 곰스크에만 빠져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고 

10년 후의 미래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막연하게 결혼 10년 전후로 곰스크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혼자만의 야심찬 목표만이 있었을 뿐.

그러나 달성하기 위한 실행계획은 미흡했고 매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며  

곰스크는 작년에 미국여행으로 수정이 되었다.



남편이 가까운 해외라도 다녀오자 했지만

주자매와 함께 가는 여행은 아직까지 훈련에 가깝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하고

친정엄마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2박 정도 호텔에서 쉬기로. 

결혼 기념일 당일은 시봉 졸업도 있어서 설 연휴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가기 전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도 않고 감흥이 없었으나

집에서 멀어지며 올림픽대로로 진입하자 떠나는 기분이 들어 설레였다.

서울에 있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차가 양화대교쪽으로 이동하고 혹시 인천까지 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여러 차례 남편에게 물어보기도 했으나. 

준비에 1도 도움을 주지 않은 나이므로 보험광고 문구 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창만 바라보았다. 

네비게이션의 그녀가 이제 곧 도착이라고 상냥하게 알려주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들판과 비닐하우스와 덩그러니 창고 같은 건물, 

그리고 이제 막 올라가는 성냥갑 같은 여러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곳.

대체 어디라는 거지? 갑자기 나타난 큰 건물로 남편이 쓰윽 들어가서 설마 했는데 우리가 이틀을 묵을 숙소라고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했지만

서울에서 밤거리도 좀 걸어보고 유명하다는 카페, 동네책방도 가 보고 싶었던 터라 

화려한 로비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새 건물에 직원들도 친절하고 깨끗했지만 

숙소에 올라가 창 밖을 보니 비닐하우스와 짓다만 아파트 건물이 나를 맞이했다.

경선생을 낳고 밖이 궁금해서 창문을 열면 곱창집 간판이 보였던 그때를 잊어서는 안되지

애써 마음을 다스려 보는데 그래도 10주년인데 비닐하우스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 할 때도 안되던 습자지 표정은 남편에게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무엇 때문에 아내가 이런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는 당황하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상품권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해이리 마을 가고 싶다고 해서. 당신이 또 신발도 사고 싶고 옷도 필요하다고 해서 

아울렛 가려고 여기를 예약했지. 숙소에만 계속 있으면 답답하잖아. 




10년을 살아놓고도 잠시 방심했다. 

최적의 동선과 합리적 소비와 효율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과 살고 있다는 것을.

물리적 시간, 비용, 체력등을 고려해서 전체 가이드를 정해 놓고 준비했을 것인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 아닌가. 



저녁을 먹으러 휑한 거리를 걸어가면서 남편의 손을 잡았다.

지나 가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대형몰에 들어가니 바글바글.

느긋하게 식당에서 왕돈까스를 먹으며 맛을 평한 후

마트에 가서 맥주와 간식거리를 고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니 기분이 좋아져

심지어 숙소로 돌아올 때는 일본 여행을 온 것이라고 생각하란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아침에 여유롭게 예능프로그램을 보다 

9시가 넘은 시각 아울렛에 가려고 숙소를 나왔다.

커피와 베이글을 먹고 찬찬히 쇼핑몰 사이를 걷노라니 어제의 실망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고르고 옷 매장을 둘러보다 발이 닿는 데로 걸어가다 보니 결국 주방용품매장이었다.

애플슬라이서, 후라이팬, 그 외 소소한 조리도구들을 열정적으로 구매하니 점심 시간이 훌쩍 넘고. 

근처 두부 전문점에서 두부를 씹지도 않고 삼키다 시피 한 후 황인용의 '카메라타'에 가기로 했다. 


10여년 만이다.

2008년 여름에 왔을 때는 신혼이었고 시댁에 살고 있었으며 

조카들이 어려서 시누네는 육아로 바쁜 시기였다. 

시이모도 함께 계셨고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집안의 중심에 있으셨던 때였다.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웅장한 사운드는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은 더 많아진 듯 했다. 


자리에 앉아 신청곡을 쓰기 전에 

황인용아저씨는 언제 오시려나 하고 기다렸는데 (전에는 음악감상실 앞에 계시는 그 분의 뒷모습만 보았다)

20분쯤 지나니 말끔하게 옷을 입으신 아저씨가 걸어오시는 것이었다. 

10년 세월이 모습이 그분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오래전의 학교 선생님을 뵙는 기분이었다. 

조성진 피아노 연주, 드뷔쉬 '달빛'과 무소르그스키 '전람회'를 신청하고 기다렸다. 

모이칸 헤어스타일의 바리스타분 말씀으로는 모든 신청곡이 선곡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뭐 어쩔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리필한 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리는데 드디어 곡이 흘러 나온다. 

집에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귀가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피아노 건반 소리가 감상실 안의 공기 위에서 떠돌아 다니다 비눗방울처럼 어느 순간 뾰로롱 하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신청곡까지 듣고 아쉽지만 주변을 한 바퀴 산책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좋은 것을 보고 듣고 있노라니 주자매가 떠오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초밥세트와 샐러드를 샀다.

TV앞에 앉아 올림픽 중계를 보며 음식을 나눠 먹는데 

마지막까지 남편은 내일 귀국하는 것 같지 않냐며 다정하게 일회용 젓가락을 내민다. 

알차게 보낸 기념 여행이었다. 




아메리카노와 베이글로 아침을 대신하고.



카메라타 안에서.

시봉은 아직 좀 힘들 듯 하고 나중에 경선생과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