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은 푸념을 흘리거나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쉽다. 어려운 환경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많은 불행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찾아 감사한 마음을 다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은 결국 쉬운 길을 택한다. 상사를 욕하고 동료를 비웃고 회사를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행은 돌고 돌아서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심지어는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기도 한다.
왜 리더인가 / 이나모리 가즈오
계엄 이후 여러 지표가 떨어지면서 지금 맡은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12월에 출시한 새 제품이 배송하자 마다 줄줄 새는 현상이 발생했다.
영하의 기온에 젤타입이 액체화가 되고 협력사에서 원래 충진 용량보다 오버해서 넣는 바람에 더욱 팽창되었다고 한다.
2400여 개 출고분 중 인입 온 것들은 아직 20여 개도 되지 않지만 아마 받고도 그냥 넘어가는 고객도 있었을 것이다.
2월에 출시 예정인 제품의 리필, 파우치 형태의 디자인에 대해 보고한다.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동판비가 추가로 들었는데 디자인의 형태에 대해 이슈가 되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담당 디자이너랑 이야기했는데 의견이 정리가 덜 되면서 실물 레퍼런스를 가져와서 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작 참고한 실물 샘플이 회사에는 없었다. 그러다 담당팀의 시장조사가 좀 미흡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죄송하다를 연발한다.
집에 가면서 생각해본다.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물류센터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 사고, 상품 제작과 관련된 것들.
제품 디자인 형태, 비용 절감 이슈, 판매 부진, 앱 내에서의 작은 오류를 사전에 캐치하지 못한 일.
신규 소싱 업체 및 제작 업체 개발, 그 외 팀원의 동기부여와 사기, 정확한 업무 R&R 분배 등등
<왜 리더인가> 책을 읽다보면 '감사한 마음을 갖는 일'에 대해서 나온다.
교세라가 마쓰시타전기산업(현 파나소닉)과 거래한 일화이다. 납기와 품질에 있어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특히 매년 가격 감가 요청이 있어 영업부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교세라는 이에 '완전납품'을 해내면서 매진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불평불만을 가지고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이라며 마쓰시다를 원망한 여러 회사도 있었는데 이나모리 선생님은 '교토의 작은 업체를 대기업이 발주를 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통보받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 들였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이해타산이 맞도록 지혜를 짜냈다고 한다. 혹독한 시절을 지나 이런 경험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밑거름이 되어 교세라 제품은 타 업체들보다 제품력과 가격면에서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큰 성취를 거두자 이나모리 선생님은 '마쓰시타 상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여 조용히 중얼거렸다고 한다.
'어떡할거에요'라는 상사의 질문에
'죄송합니다, 대안은 OO입니다'라고 말하지만 편치 않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책상 위에 놓인 '왜 리더인가'를 전에 읽었을 때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만 전하시는 것 같아 '흥' 하고 내려놓았는데 다시금 꼼꼼하게 읽어본다.
하지만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서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인생의 흐름은 어느새 역풍에서 순풍으로 바뀌었다. < 왜 리더인가 >
선생님 말씀처럼 지금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역풍에서 순풍으로 바뀌길 기대해 보는 중이다.
그렇지만 작디 작고 소란스러운 내 마음 그릇이 넓혀지지가 않는다. 찰랑찰랑 작은 그릇에 담긴 물이 넘치고 깨지기 일보 직전이다.
찬찬히 '마쓰시타상'과 같은 감사할 대상을 찾아본다.
회사의 상사에게 감사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를 맡게 되어 역량이 올라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예정된 충진량보다 더 많이 넣어준 협력업체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CS가 속출하고 있지만 공부가 된다. 앞으로 체크리스트를 정리하게 된다.
최초 인쇄동판 의사결정을 혼자 해서 이슈가 생긴 실무자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프로세스를 정리하게 된다.
실물 레퍼런스를 구매하지 않고 온라인이나 외부업체 사진을 참고삼아 감각적으로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감사하다. 실감을 할 수 있는 레퍼런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쓰다 보니 살짝 어금니를 물고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은데 어허 그러지 마시오.
월별 회고를 하면서 나의 '마쓰시타상'을 찾아 감사를 나즈막히 한다면
올해 말쯤에는 좀 더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