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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맨땅에서 헤딩하는 회사원

by 와락 2025.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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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국어학원에 데려다주고 피아노학원에 가서 뚱땅거릴까 하다 회사로 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고요하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타닥타닥 내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회사 냉장고에 있는 매일두유를 하나 꺼내 마시고 자리에 앉는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유튜브로 듣는다. 
 
 
토요일 주말 출근은 2007년에는 곧잘 했었다. 
그때는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PC웹으로 틀어놓고 일했었다.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바라보는 시야도 커졌을 테지만
불끈 달아오른 의지보다는 부족한 실력으로 여러 기회를 잡지 못한 일들도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금요일 사업계획을 1차 보고 했다. 
전년도 숫자 리뷰를 했고, 올해의 목표액을 설정하는데 보고 받는 분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참 어려워요. 그렇죠?'
짜잔, 이렇습니다. 하겠습니다. 의지치로 숫자를 올리고 싶지만
작년도 괴로웠기에 함부로 입을 열지는 않는다. 
 
연차대비 퍼포먼스가 더욱 필요한 멤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은 모를 것이다. 돌아보면 그 나이 때 나 역시 몰랐던 것 같다. 지속적으로 역량을 쌓기 위해 영어든, 업무에 관련 지식이든 그 연차와 시기에 맞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물어보고 더 배우고 더 쌓아야 한다.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그 당시 하지 않고 미래의 나에게 미뤄던 일들로 여전히 고통받기도 한다.
이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일을 하다 보면 업무 퇴근시간을 넘기는 것에 대해 나는 불만이 없지만 같이 일하는 멤버들에게 강요하기는 어렵다. 
정시퇴근은 꼭 지켜야 하는 가치고, 정해진 업무 시간에만 맞춰서 일을 해야 되는 멤버도 있다. 
내가 뭐라고. 그래봤자 중간관리자이고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어떤 명분을 주고 일을 요청해야 하는가. 
팀장의 역할이라 하지만 어렵다.
 
 
 
 
이런 나의 기분까지 알고리즘으로 캐치한 것인가. 정말 무서운 구글님이여.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자극적인 썸네일에 클릭하게 되었다. 
 

소비더머니

 
김재명 회장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국수사업을 할 때부터 당시 18살 입사해 성실함으로 인정을 받았고 이 회장이 사업을 확장(삼성물산)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을 때 대구의 양조장을 맡았다고 한다.
 
6.25가 발발하자 사업을 접고 대구로 다시 피난을 왔는데 그 동안 신경을 쓰지 못한 대구 양조장 사장이자 공장장이었던 김재명 회장이 이 회장에게 3억 원을 드리며 다시 재기하라 했다고 한다. 

 
전쟁통에 공장을 지킨 것도 신기하고, 사장이 신경을 쓰지 못했음에도 수익금을 빼돌리지 않은 것도 정말 대단한데 심지어 그 돈을 다시 사장에게 주다니. 
 
이 회장은 그 돈으로 부산에 가서 제조업에 도전  '제일제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설탕, 설탕을 담을 포대를 만들 기술도 국내에는 없었고 일본 공장에 설탕 만드는 기계를 팔아라 했는데 한국에는 안 판다고 해서 결국   공장에서 일꾼들과 먹고 자며 설탕 제조에 박차를 가했는데 그 공장장이 바로 '김재명'
 

 
줄곧 맨땅에서 헤딩하듯 처음 도전하는 제품들을 성공시키고 수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며 활약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의 아들이 쓴 회고록에도 등장하는 김재명 회장은 윗사람에게는 잘하고 아랫사람에게는 혹독하게 하는 관리자도 아니었다고 한다. 
 
 

 
공장을 지을 때 합숙을 하면
공장장인데도 제일 먼저 현장에 나오고 나올 때도 직원들 자는데 방해될까 봐
깰까 봐 조심히 움직이고 불도 안 켜고 문도 살살 닫고
이런 모습이 소문이 나서 직원들이 더 따랐다고 한다. 
 

 
이렇게 35년을 삼성에서 일하다 50대 초반이 돼서야 삼성을 떠난다.

이병철 회장은 그가 하는 사업은 무엇이든 돕겠다 약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동서식품을 인수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익을 건실하게 내는 회사로 성장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있었던 프리마. 
지금도 어머니는(나 역시 종종) 동서식품의 믹스커피를 마신다. 

 
 
 
동서식품 관련 영상을 보면서
줄곧 맨땅에서 헤딩하듯 처음 도전하는 제품들을 성공시키고 
아랫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솔선수범 했으며
정말 신의성실하게 회사의 일꾼으로 충실하게 보낸 '회사원'으로의 김재명씨가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그 전까지 아무리 회장의 신임을 받는다 하더라도 일개 회사원이 아니라 사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50대 초반이 되서야 자신의 사업을 새로 시작한 그 용기도 대단하다.
물론 모종의 삼성과의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충직함이 놀랍다. 
 
 
 
일을 할 때 마다 드는 여러 생각 중에
'내가 뭐라고'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작은 회사이므로 코파운더도 아닌 내가 월급을 받고 일을 하지만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몰될 때 마다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차갑게 스스로를 비웃기도 한다.
더불어 회사와 나를 분리시키고 스스로를 직업인으로 발전시키며 회사에 있는 시간 현금채굴을 한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욱 좋다는 글도 자주 본다. 
 
 
위의 일화에 나오는 김재명 회장에 감히 나를 비교할 수는 없으며
언제까지 회사원으로 지내게 될지 모르지만 
정말 맨땅에서 헤딩하듯 모르는 것 투성이의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좀 더 격려하고
같이 일하는 멤버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앞서서 더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에 매진하는 동안
한석봉의 어머니에 빙의되어 떡을 써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월요일의 나를 위한 선물을 해 봅니다. 
타팀에서 요청한 회신과 1차 사업계획 리뷰, 그리고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Canva에서 만들어본 AI 이미지, 관련 키워드 혼자 있는 사무실 저녁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