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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좋은 시그널입니다

by 와락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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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소나타 12번을 듣게 된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힘들 때 듣는 클래식이라는 영상으로 접했는데 애플뮤직에서 글렌굴드 연주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마음이 부대끼던 나날이었고 날도 추웠다. 얼굴에 타고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티슈로 닦아내며 판교역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던 날들이 기억난다. 그러고 나서 피아노 선생님께 12번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셨다. 대부분 ’ 비창‘같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대표곡을 연주하길 희망하기 때문에.

악보를 처음 받고 신나 하며 뚱땅거리는데 갈수록 어렵다. 어제도 선생님께 어떤 곡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칠 수록 어렵네요라고 말하자 빙그레 웃으며  ‘OO님 귀가 더 잘 들리기게 돼서 그런 거예요. 좋은 시그널입니다 ‘라고 답해주셨다. 그리고 1악장의 4번째 변주의 진도를 나갔다.

오른손과 왼손의 움직임
그중에 악보도 봐야 하고 발을 움직여 페달까지 화음마다 박자를 맞춰 밟아야 한다. ‘읏따‘ 하는 느낌으로. 즉 손으로 치고 나서 바로 페달을 밟아야 한다. 같이 누르거나 조금이라도 늦게 발을 떼면 음이 뭉개진다. 잠시 딴생각을 하면 바로 티가 난다. 토요일 레슨을 받는 시간이면 뇌가 평소보다 1.5배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달리기가 머리를 비우는 듯한 운동이라면
피아노는 뇌 속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 같은 운동이다. 근력운동처럼 조금이라도 그만두면 바로 퇴화되기도 하고. 길을 만들고 넓히기까지 드는 노력대비 가시적인 성과가 너무 떨어진다. 그래도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화음을 이루어 음악이 되기도 하는 이 과정이 놀랍다. 처음에는 막연히 놀랍고 ’어 다시 칠 수 있구나 ‘ 하는 생각에 즐거웠다면 이제는 조성진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의 연주에 달린  ‘그동안 내가 친 건 곱창이었구나’라는 댓글처럼 나의 어색한 타건과 미묘하게 엇나가는 리듬, 아쉬운 화음이 듣기 고역이다. 그나마 다행은 아주 조금씩 정말로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12번 1악장은 모두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학원에 그랜드피아노가 있는 작은 연습실이 있는데 11월 즈음에는 좀 더 매끄러운 연주로 1악장을 모두 녹음해 보련다.


베토벤 소나타 12번 1악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