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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고구마의 위로

by 와락 2010. 3. 4.



PM 10:30.
그는 아직 퇴근 전이다.
출출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으나
먹을 것이라곤 고구마 뿐이다.

슥슥, 필러로 껍질을 벗겨내어 보니 속살이 뽀얗다.
우걱우걱, 입 안에 가득 넣고 사정없이 씹어 삼킨다.
참 모양 빠지게시리, 방에 거울이 없는 게 다행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배만 볼록 나온 삐에로가 정신없이 고구마를 먹고 있는 모습일테니-

칩거 생활 4일째.

본의아니게 시작된 이 생활에 대한 감사함은 변함없으나...
좀이 쑤시긴 하다. 감기 걸릴까봐 창문도 제대로 열어 놓지 못하니...


이런 저런 생각들,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대부분 경제적인 것이지만-
고민하다 보니 우울해졌다.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리려고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꺼내 들었다.
행복을 정복했다니, 나에게도 알려주시오.

읽자마자 눈을 뗄 수 없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문장이 나와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뭥미.나에게 더욱 고통만 주는구만...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 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다.' p25


글쓴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아사히 맥주가 먹고 싶어졌다.
원래 맥주를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닌데....
맥주와 감자칩.

지금 내 울적한 기분을 달래줄 알코올.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을 맛보고 싶다.

먼저 자라고 하는 걸 보니
남편은 12시가 되기 직전, 호박마차라도 타고 오려나 보다.


꿈 속에서라도
거품 가득한 맥주를 실컷 들이켜야지
꿀꺽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