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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동안 나는 산후조리원 결정문제로 머리 아프게 고민중이다. 100만원의 기회 비용 때문인 것인데, 내가 가고자 하는 병원 부속 조리원이 동네 근처 보다 비싸서 단박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1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수십가지가 떠올라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래 동네로 가자"고 했다가도 둘째는 더욱 산후조리를 잘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번복하길 계속. 남편은 1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가방을 포기하면 된다고 부추기기도. 머리는 계속 아프다.
사실 100만원.산후조리를 위해 그 정도 추가 투자는 내가 그간 일해온 것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 건강을 위해 쓸 수 있는 비용이지만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올 댓 100만원. 그것도 대부분 시경과 관계된 것이라서-어린이집 2.5개월 비용과 맞먹네- 갑자기 슬퍼지기도 한다. 내가 이럴려고 결혼해서 사는건가.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네이버 오늘의 책 소개를 보고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추천도 있고.
얼마 전 본 '빅 피처'와 유사하다. 결국 '꿈'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차이점은 '빅 피처'의 주인공은 어쩌면 꿈을 이룬 것이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주인공은 현실의 우리들 처럼 계속 '꿈'을, 나만의 '곰스크'를 안고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
나의 곰스크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얼마 전까지는 '세계여행'이 나의 곰스크였다. 곰스크를 위해 일을 했고, 막연하게 그 곳에 가야만 내 인생의 2막이 펼쳐진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는 잠시 그 꿈을 접어야 했고 연달아 소중한 가족이 생겨서 다시 한 번 '언젠가'로 미뤄두고 있다.
주인공의 아내가, 곰스크로 가는 도중 임시 정착한 마을에서 안정을 찾는 순간부터, 책 속의 주인공에 완전 동화된 나는 불안하고 그녀가 미련해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어쩌면 그 모습 또한 나일텐데.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너무 무거운 '안락의자'를 선물하여 곰스크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책속에 나온 구절처럼 우리의 결혼생활이 불행하거나 부부간에 존경과 호의와 사랑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위한 두 아이들을 위한 존재라는 아주 깊고 견고한 소속감이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무조건적인 소속감, 행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우리를 깊게 누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된다. 물론 우리 부부는 언제부터인가 '우리만의 곰스크'에 대해서는 대화 주제에 올리지도 않는다. '아직 인생은 기니까. 언젠간 꼭 가고 말테야 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라고 믿고 싶지만 말이다.
# 인상깊은 구절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서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p10
내 자신과 내가 소유한 것들에 끊임없는 불안을 던져 주는 탈출의 욕망을 뿌리뽑고 가족의 품에 머무는 고요하고 만족스러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할 때도 있다.
자기가 선택한 바로 그 궤도를 달리는 게 인생이라는 주장은 어쩌면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 교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p11
가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을 거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마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p61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것은 나를 사로잡는다. 곰스크로 가는 특급열차가 저 멀리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소리가 초원을 뚫고 울리다가 멀리 사라질 때면, 갑자기 뭔가 고통스러운 것이 솟구쳐 나는 쓸쓸한 심연의 가장자리에 놓인 것 처럼 잠시 서 있곤 한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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