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과 나는
바늘로 서로의 상처를 꿰매주기는 커녕,
그 바늘 끝으로 후벼파고 있다.
2주 전에는
무슨 말 끝에, '모성애 없는 여자의 기준이 바로 나'라고 해서
내 두 귀를 의심했는데, 아무리 우리 관계가 다시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가 내게 뱉은 그 말은 문신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주 출장 3박 4일 후, 몸살이 났다는 이유로 누운 채,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는 것인데, 너무 아파 링겔을 맞고 온 나는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허탈하기까지.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 제주 출장에서, 날 만나는 모팀의 팀장님이 내 이름은 잘 기억 못하면서
'XX팀'에 있었다고 하니 그 알듯 말듯 요상한 미소를 지어서 지금의 사수에게
대체 4년전에 내가 어느 정도였냐 물어보니 그때 당시 '미친X"이라 불렀다 한다.
그 말을 듣고, 자리에 있던 물인지 술인지 벌컥 들이마시고 꺅 소리를 한번 질렀지만.
그리고, 그건 아주 오래 전, 지난 간 일이지만(라고 믿고 싶지만)
주말, 감기 걸려 골골대는 시성이를 업은 채
텔레비전을 켜니 tvn에서 목소리 큰 강사 아줌마가 두 팔을 휘휘 저으며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몇번 tv에서 보기도 하고, 서점에서 그녀가 낸 책도 한 두번 봤던 터라
'저런류'의 '자기계발서'는 이미 읽을 만큼 읽었다면서 채널을 돌리려던 순간
워킹맘. 힘들어요.
아침에 부랴부랴 준비하고, 애 얼집에 맡기고, 애는 울고불고, 엄마 회사가지마 이러는데
원장선생님이 애기랑 눈 마주치 말고 기어나가세요. 라는 말에 겨우 기어나와 뛰어가서는
버스 타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합니다. '아 이거 계속 다녀야 하나'
애를 조심스레 눕히고 홀린듯이 강의를 연속해서 듣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제목도 독하다. "언니의 독설"
첫장을 펴니
'아이 찾느라 회식 때 마다 눈치 보면서 빠지고, 남편은 '그러고도 네가 엄마냐?' 부장은 '네가 그러고도 과장이냐' 양쪽에서 한 대씩 얻어맞으면 살맛이 뚝 떨어지지. 그럼 밤에 혼자 생각해. '얼마나 더 많이 잃어야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을까' 그럼 또 다른 네가 악다구니를 치지.'고작 이 정도에서 포기하려고 독한 년 소리 들어가면서 몇 년씩 버텼니?'
위 문장을 읽고 눈물이 찔끔 나올뻔했다.
미혼인 내 친구들은 아무리 말해도 이해 못하고, 애가 있는 친한 언니들은 (주로 전업주부)
무조건 내가 내 남편 길들이기를 잘못해서 그런거라면서, 그리고 애들을 위해 직장그만두는게 좋겠다는 정도의 정말 도움 하나도 안되는 조언만 받았던 터라, 이 책을 통해 난 개신교식으로 말하자면 "은혜"를 충만하게 입었다. 구구절절 '아멘'을 외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만신창이가 된 나에게 빨간약이 되었던 구절들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 남자처럼 인생이 심플하지 않아.
그런데 중요한 거, 복잡한 걸 복잡하게 보면 끝없이 복잡해져. 질질 끌려가게 된다고.
복잡한 걸 심플하게 볼 줄 알아야 해.
"그래 나 결혼했다, 어쩔래? 애 낳았어, 어쩔래? 그게 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 처리능력이 생겨.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내공이 생기면서 실제로 심플해져. 인생을 멀리 봐. 당장 내일을 보면 복잡하지만 길게 보면 심플한 게 우리 삶이야. p 105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는 건데 왜 그런 '처절한' 표현을 쓰냐는 거야. "지쳤어요."하고 말하는 대신 "힘들었지만 해냈어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잖아. 말이 네 미래를 결정해. '말 습관'부터 바꾸라고. p 178
엄마가 포기하면 딸도 포기하게 돼. 딸도 자라서 엄마처럼 똑같은 고민을 할 거 아냐.
'내 욕심 차리다가 애 망치겠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은 다 포기하고 딸 매니저 역할을 하겠지. 결국 매니저만 길러내는 거야. 매니저에서 매니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지. 그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해. p 88
앞으로 지금보다 더 힘든 시기도 올 테지만,
김미경 강사님이 그랬다. 스펙을 쌓으라고. 버티라고. 견디라고
회사에서 일만 배우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 내가 이 힘든 모든 것들을 견디어 내는 내공.
그리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해결해 나가는 힘. 혹자는 나를 '미친x','독한x'이라 부른다 하더라도. 그리고 실제 내가 '독한x'이라 해도 위축되지 말고 자부심 갖기.
연년생 낳아 회사 다니면서 다시 예전 몸무게(몸매는 아니지만)로 돌아가, 놋북 들고 집에 돌아와서라도 맡은 일 꾀부리지 않고 다 하는 이런 '강한 나'에게 상을 주진 못할 망정 자책하지는 말자고. 나는 소중해. 암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