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네살
우리 시경이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부쩍 더 심해졌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는 내 마음 추스리는 것도 쉽지 않아
아이 마음을 전혀 보지 못했다.
안된다고 하면 무조건 소리를 지르면서 거세게 반항하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품안으로 파고 들어 안아달라고 하다
다시 또 소리를 지르고, 동생을 때리고
무엇이든 혼자 하겠다고 떼를 쓰다가 어린이집 차를 놓칠 뻔 하기도.
며칠 전, 시경이는 아주 진지하게, 엄한 목소리로 동생을 혼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어? 언니가 말했지. '
찰싹 찰싹 손바닥으로 동생 얼굴을 때리며서 말이다.
처음에는 '그만 해'라며 말리다가 가만히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안이 씁쓸했다. 백퍼 내 미니미 주시경 아니던가.
제주에 오기 전 나는 아이가 돌아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충실한 엄마가 아니었다.
그 몫은 외할머니와 아빠,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그리고 이모가 대신하여 주었고,
내 눈에는 작고 자주 아픈 둘째만 보였다.
엄마는 동생에게 뺏기고, 그래도 본인에게는 아빠를 비롯해서
언제나 엄마 대신 사랑을 듬뿍 줄 식구가 있었는데...
문득, 지금 우리 첫째 마음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경이 마음 속에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몰랐을 것 같다.
어렴품이 알았다 하더라도, 그냥 '시경이는 아빠를 더 좋아하지. 연년생인데 어쩔수 없잖아.
나도 최선을 다했어.' 라고 애써 외면하며 변명을 늘어놓았을지도.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조절하기 위해
타임아웃을 정해 놓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기 위해
입꼬리를 올리고 아이에게 미소를 짓기 위해
무엇보다 엄마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부족한 나는 매일 노력하고 있다.
엄마 자리 찾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우리 조직의 철학인 '섬김을 통한 냉정'은 회사보다
내 가정생활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사려니 숲에서 '귀를 기울이면' 중인 시경.
난쟁이들 만나러 왔는데 없다면서 대실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