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동네 꼬맹이들이 모이는 곳, 일종의 아지트 같은 장소는
104동과 105동 사이에 자리 잡은 평상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이들을 앞세워 쭈뼛거리며 가니 엄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 어색어색. 다행히 시경이를 봐주셨던 동네 언니 덕분에 어색하게 곁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어설픈 전업주부맘 코스프레는 쉽지 않다.
이 곳에서 우리 시경이는 동네 언니 오빠들과 비눗방울 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고
여우야 여우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까지.
101동 앞에는 지난주부터 분수대가 가동되었는데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아이들이 꺅꺅 거리는 소리로 아파트가 시끌시끌하다.
회사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고, 때로는 멍하니 창밖 구름을 구경하던 그 시각에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커가고 있었다.
휴가가 아니었으면, 건성으로 지나갔을, 어쩌면 몰랐을 것들
적어도 나는 아침,저녁 아이들과 최소 3시간 이상 보내고 있어.
퇴근 하고 집에 가서 한 시간 이상 책도 읽어주는 걸.
급한 성격대로 얼음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커피를 모두 마셔버려
잔에 남긴 얼음이 민망해져버린 아이스커피를 들고서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를 보며
회사(남자)동료는 '혹시, 숙제처럼 애들과 시간을 보내는것은 아니야' 라고 되물었다.
뜨끔했지만, 왠지 분한 마음에
그런 님은 집에 가서 애들 책 읽어주나요? 라고 되묻기나 하고(이게 아닌데, 참 못난 1인)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지난 두 달간,
밖으로는 힘들다 입으로 투정하고,
안으로는 꾸역꾸역 숙제처럼 해치우고 있었다.
이마는 잔뜩 찌푸린채로, 양 미간 사이에 이단 주름을 만들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꽉 다문 입술로
아이들과 보냈을 것이다.
안식휴가가 없었더라면,
한달 간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지 않았더라면
우리 딸들의 4살, 3살 여름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울컥해졌다.
그러지 말라고 육아서에 아무리 씌여 있어도, 죄책감이 디폴트인 워킹맘이니.
집에서 보낼 달콤한 날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휴가 내내 손님들 맞이하며 주말을 보냈는데, 다음주에는 시아버지를 비롯, 시댁분들이 오신다.
안식 마지막주는 대망의 시댁 식구맞이로 화려하게 끝이 나고.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총총 거리며 회사에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