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58분.
둘째 녀석의 코고는 소리에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작은 방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이를 갈아대서 놀라게 하더니(가끔은 남편과 함께 이를 갈아 이기적인 유전자의 힘에 대해 느끼게 해주기도) 감기 기운이 있을 때는 코가 막혀 숨쉬는 소리가 더욱 심해진다.
참고 견뎌봤지만 오늘같은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다.
매번 이불을 덮어줘도 튼튼한 두 다리로 엄마를 시험하듯 걷어차기 바쁜 큰 아이와 하루종일 38도를 오르내려 시간마다 온도 체크를 해 줘야 하는 작은 아이.
주말내내 푹 쉬었지만, 피곤은 저 멀리 한라산의 눈처럼 양어깨에 소복히 내려앉아 두께를 더하고
재계약 업무들은 처음엔 눈뭉치 수준이었는데, 어느새 눈덩이처럼 굴러와 속력을 낼 수록 더 커져만 간다.
오후에는 두 달 내내 입에 대지도 않던 믹스커피를 마셨다. 달큰하지만 텁텁한 뒷맛. 1/2 칼로리라 하지만 금새 살이 불어난 기분.내 몸에 몹쓸짓을 한 것 같아 영 찜찜하다. 믹스커피 한 잔에도 죄책감을 느끼다니.
시곗바늘이 세시를 넘어섰다.
몇 주 후면 서른 네살이 된다. 입사 때 우러러 보던 하늘 같은 파트장님의 나이이다.
서른 중반이 주는 무게감(?),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대화를 이끌어 가는 노련미.
조직에서도 인정받는 유능함. 당시에는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던 워킹맘의 라이프(워크>라이프, 요런 느낌)
그때 느꼈던 그 감정들을 깨알같이 떠올려 나와 일치되는 것을 애써 찾아보면 서른 중반이라는 것.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안녕하냐고 묻는 글과 영상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온다.
사회생활 11년차이지만 내 틀안에 갇혀 안녕하지 못한 일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어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나이기에.
죄책감은, 실은 믹스커피 때문이 아니라
대자보를 통해 쏟아내는 그들의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글을 보면서
조용히 좋아요와 리트윗만 하고 있는 내 모습 때문은 아닐까.
김광석 아저씨가 열린음악회에서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하고 노래를 부를 때
그런가보다 하고 밥 숟가락에 생선 얹어 먹기 바빴는데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리 쉬며 그 노래가락을 흥얼거린다.
대체 나는 이 새벽에 왜 이러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또 하루가 밝아오는구나.
여전히 나는 유능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고
타요를 맘에 들지 않게 그렸다며 딸아이에게 타박 받고
안녕하냐고 묻는 친구들 뒤에 숨어서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나를 향해 빠르게 굴러오는 업무 눈덩이들과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곧 새벽 4시다. 자야하는데.
비비안리는 아니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아. 오늘의 태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