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과장된 몸짓으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도망가는 둘째를 달래서 밥을 먹이고
책상에 오도커니 앉아 선생님이 굳이 말로 해도 되는데 소리를 질러서 유치원에 가기 싫은거라며
조목조목 이유를 대는 첫째에게 곧 있으면 유치원 방학이니 그때 쉬면 되지 않겠느냐고 타일러
세수시키고 옷을 입힌다.
옥토넛을 볼 때는 찰떡궁합 주자매이지만
유치원 가기 전, 옷 입을 때는 언니 옷을 탐내는 둘째와 본인은 입지 않으면서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은
첫째의 팽팽한 신경전으로 내 가슴은 타들어 간다.
조카가 물려 준 푸른색 신데렐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 입고
비슷한 색깔의 머리핀으로 장식을 한껏 하고 아파트 문을 나서자
첫째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한결 부드러워 지고.
배가 볼록해서 치마를 입어도 아저씨들 마냥 배 밑으로 치마가 둘러지는 둘째는
기분이 좋아져 랄랄라.랄라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치마가 좋단 말이지? 으응?
방금 전까지 싸웠는데도 유치원 차 타기 전에는 다시 다정한 주자매로 돌아왔다.
휴가 초창기에는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고 옷매무새도 확인하고 배웅을 나갔는데
요즘엔 세수만 겨우 하고 버스 놓칠새라 허겁지겁.
아이들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 거울을 보니 그렇게 진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안식 휴가 마지막 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스스로 안심시키며 잉여롭게 보낸 한 달.
아이들을 보내고 집 앞 카페에서 책도 읽고, 도서관도 가고, 사전쓰기도 하고.
3시 반이면 어김없이 둘째를 만나서 야호.엄마가 좋아. 소리도 듣고.
요리블로그를 보고 아이들과 몇 가지 음식도 같이 만들고.
(요리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낮았는지, 짜장을 볶았을 뿐인데 먹을 만 하다며 다들 놀라워 함)
아직도 첫째 마음속에 엄마가 희미한 것 같아
단 둘이 데이트, 우쭈쭈 애기 놀이, 자기 전 첫째 마음속 친구들 불러내기도 하고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경이란 이름이 지어지기 까지,
동생이 태어나기 전 까지 있었던 일들을 차근히 이야기 한다.
엄마의 이야기 흐름이 순서에 맞지 않은 듯 하면
조용히 듣다가 그게 아닌 것 같다고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도 빼놓지 않고(끄응)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하루에 있었던 아이들과의 일상을 낱낱이 보고 하고
잠자기 전 책 읽어주고 자리에 같이 누워 서로 간지럽히기 몇 번 하고
자기 싫다는 녀석들의 투정을 듣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고 아침이 되기 일쑤.
이러다가도 갑자기 이유 없이 불안감이 엄습하면
박혜란 선생님 말씀대로 세상에 공짜는 없고, 허투루 보낸 시간도 없다는 걸 떠올린다.
여전히 아기 같지만, 가끔 본인의 의사를 논리적으로 밝히는 딸을 볼 때마다
매일 저녁 엄마 같이 놀자고 보챌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다.
2년 전에 안식휴가를 끝내고 회사에 돌아갈 때는 마음이 가벼웠는데
지금 내가 회사에 돌아가는게 맞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보다 많은 시간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게 아닌가.
프로젝트처럼 결과물이 나오는 그런 것을 하지 않고
그저 흐르듯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 만으로도 중요하구나를 깨달은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