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아파트 앞에 새로 생긴 카페를 보며
몇 달 못갈 것 같다. 어쩌냐. 라고 동생과 쯧쯧 혀를 찼는데.
기나긴 겨울과 봄을 꿋꿋하게 버티더니 여름부터 가게 안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 11시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놓고 소설책을 읽는게
안식휴가 버킷 리스트 중 하나 였는데 스벅 근처까지 가려면 얼굴에 비비크림을 발라줘야 하므로.
혀를 끌끌 찼던 그 카페에 3번째 방문 중이다. (지난 번 방문 때는 도장 쿠폰까지 받아 10잔을 채울 기세임)
각 자리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엄마 손님들이 맹렬하게 수다 중이라
카페 주인장은 BGM을 아예 꺼 놓으시고.
인터넷검색 중 발견한 기적의 모자. 그것도 작년에 대유행했었다는(남편은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프라다st 돌돌이 챙모자를 쓰고, 내 얼굴의 1/3정도는 가려주는 선글라스를 쓰면
하하하 정말 두려울 것이 없다.
여기에 동생이 각종 콘서트 장에서 겟한 스탭 티셔츠를 입고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그래도 남편에 비하면 양반이다.
남편은 이문세, 김현중, 재즈페스티벌 등등 매일 등짝에 커다랗게 행사명이 씌여진 옷을 잘도 입고
탄천에서 런닝을 한다.
이렇게 다니는 주제에
지난 번 시청 갔을 때 어떤 할머니가 나보고 아줌마라고 불러
엄청 불쾌했다고 동생한테 꿍시렁 꿍시렁
동생은 1초의 망설임 없이 '언니. 아줌마야' , '야, 너도 마찬가지야.'
공격은 주고 받는 맛이지.
휴가 기간 동안 무언가를 꼭 달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좋다.
계획을 세우고, 달성하고, 그 다음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면 속상하고, 무능한 것 같고,
그러지 않아도 정말 괜찮다는 것을 올 여름에 깨달은 것 같다(뤼얼리?)
어느 순간 마음의 빗장이 풀린 기분이다.
엄마에게 말씀드리니, 엄마는 기승전'기도'로 이야기가 흘러
본인이 이탈리아 성당에서 나를 위한 봉헌미사를 넣으셔서 그렇다며.(그럼 그렇지)
항상 나는 스스로에게
막중한 의무와 책임과 달성할 그 무엇을 넘겨주고
앞만 보고 달리도록 채찍질 하진 않았나.
스스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혹한 평가를 했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기도 때문 인지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아이들에게 받는 무한 애정 덕분인지(엄마가 아무리 좋아도 숨바꼭질은 너희들 끼리 하렴)
청소하긴 번거롭지만 전보다 넓어져 마음대로 널브러져 있을 집이 있기 때문인지 .
무엇보다 한 달간의 안식휴가 덕분이겠지만-
좋다.
어쩌면 좋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세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뇌를 잠깐 속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른 다섯의 여름은 정말 좋구나.